음악에서 3이란 숫자는 다양하게 활용되고 해석된다.음의 세기를 나타내는 3박자로,성악과 기악에선 트리오로,여러 음악 이론에서도 다양하게 쓰인다.
일례로 화성학과 대위법에서 3화음은 음을 조율하는 기본 코드이나,3도 음역은 장3도의 불완전음으로서 이에 플랫(b) 하나를 붙이면 단3도로 바뀌어 음조의 명암이 달라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교육의 3박자' 혹은 ‘교육 트리오’도 우리의 교육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의 명암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핵심기관으로 볼 수 있다.어떤 기관이 우리 교육의 3박자이자 교육 트리오인가.필자는 높은 성부(聲部)의 교육부를 정점으로 좌우에 낮은 성부의 서울대와 한국교육개발원을 지목하고 싶다.혹자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궤변이냐고 힐난할지 모르나 위의 세 기관이 우리 교육을 좌지우지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제반 국가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교육 권력의 중추기관이라면,한국교육개발원은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핵심 교육연구기관이며,서울대는 국가의 제도적 보호 하에 우리 교육을 실질적으로 선도하는 최고 국립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이를 음악의 오케스트라에 비유해 비판하자면,교육부는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교육 관계자와 교육 기관을 관리·감독하는 무소불위의 교육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작곡자 겸 지휘자이며,한국교육개발원은 작곡자의 의도나 취향대로 오선지에 악보를 그려넣는 작곡보조자이며,서울대는 악보와 지휘자의 손과 표정에 따라 악기를 연주하는 주자(奏者)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 기관은 음악 미학의 3박자 관계뿐만 아니라 화성악의 3도 영역에 속하는 소위 ‘삼위(三位)의 교육체’라고 볼 수 있다.이들 삼위의 교육체가 조율과 연습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가에 청중에게는 왈츠로 들릴 수도 있고 진혼곡으로 들릴 수도 있으며,또한 협화음으로 즐거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불협화음으로 짜증스러운 소음이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우리의 ‘교육 트리오'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지휘하고 악보를 쓰고 연주를 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반 청중들은 이들이 충실하게 소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청중들은 트리오의 수장들이 간혹 엉터리 연주를 할 때마다 불평과 야유를 보내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특정 학연 고리로 연결된 트리오의 수장들과 일부 실세 수하들은 번번이 국가정책 결정이나 재정분배를 하면서 상호간 밀어주고 끌어주는 지나치게 돈독한 정리(情理)를 발휘함으로써 “자기들끼리 다 해 먹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육 트리오'는 지금이라도 심기일전하여 청중의 기대와 수준에 적합한 곡을 쓰고 충실한 연주를 해주기 바란다.
이정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홍익대 겸임교수
일례로 화성학과 대위법에서 3화음은 음을 조율하는 기본 코드이나,3도 음역은 장3도의 불완전음으로서 이에 플랫(b) 하나를 붙이면 단3도로 바뀌어 음조의 명암이 달라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교육의 3박자' 혹은 ‘교육 트리오’도 우리의 교육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의 명암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핵심기관으로 볼 수 있다.어떤 기관이 우리 교육의 3박자이자 교육 트리오인가.필자는 높은 성부(聲部)의 교육부를 정점으로 좌우에 낮은 성부의 서울대와 한국교육개발원을 지목하고 싶다.혹자는 무슨 얼토당토않은 궤변이냐고 힐난할지 모르나 위의 세 기관이 우리 교육을 좌지우지해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제반 국가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교육 권력의 중추기관이라면,한국교육개발원은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핵심 교육연구기관이며,서울대는 국가의 제도적 보호 하에 우리 교육을 실질적으로 선도하는 최고 국립교육기관이기 때문이다.이를 음악의 오케스트라에 비유해 비판하자면,교육부는 교육정책을 결정하고 교육 관계자와 교육 기관을 관리·감독하는 무소불위의 교육 권력을 손에 쥐고 휘두르는 작곡자 겸 지휘자이며,한국교육개발원은 작곡자의 의도나 취향대로 오선지에 악보를 그려넣는 작곡보조자이며,서울대는 악보와 지휘자의 손과 표정에 따라 악기를 연주하는 주자(奏者)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세 기관은 음악 미학의 3박자 관계뿐만 아니라 화성악의 3도 영역에 속하는 소위 ‘삼위(三位)의 교육체’라고 볼 수 있다.이들 삼위의 교육체가 조율과 연습을 얼마나 충실히 했는가에 청중에게는 왈츠로 들릴 수도 있고 진혼곡으로 들릴 수도 있으며,또한 협화음으로 즐거운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불협화음으로 짜증스러운 소음이 될 수도 있다.
현재까지 우리의 ‘교육 트리오'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지휘하고 악보를 쓰고 연주를 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반 청중들은 이들이 충실하게 소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청중들은 트리오의 수장들이 간혹 엉터리 연주를 할 때마다 불평과 야유를 보내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특정 학연 고리로 연결된 트리오의 수장들과 일부 실세 수하들은 번번이 국가정책 결정이나 재정분배를 하면서 상호간 밀어주고 끌어주는 지나치게 돈독한 정리(情理)를 발휘함으로써 “자기들끼리 다 해 먹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육 트리오'는 지금이라도 심기일전하여 청중의 기대와 수준에 적합한 곡을 쓰고 충실한 연주를 해주기 바란다.
이정규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홍익대 겸임교수
2003-07-11 1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