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크고 작은 권력에 대해 아래로부터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21세기적 현상으로 ‘안티’운동을 들 수 있다.주로 인터넷 공간을 이용하기에 아무리 소수의 의견이라도 손쉽게 동조자를 끌어모을 수 있고 저항의 대상 또한 기업에서부터 정치인,연예인까지 다양하다.명예훼손 등을 내세워 이를 억압하려는 기도도 있지만 사회의 성숙과 시민의 권리 확보에 짠 소금과 같은 기능을 한다는 평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반대하는 ‘안티 전교조’ 시민단체 ‘교육공동체시민연합’(교시련)이 생긴다고 한다.내놓고 밝힌 것은 아니지만 전교조에 대항할 시민단체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역설해온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가 상임공동대표로 내정됐고 창립선언문에서 ‘특정 교직단체’의 ‘편향적 의식화’교육을 비판하며 ‘민주적이고 조화로운 교육공동체’ 회복을 내세운 데서 ‘안티 전교조’적 성격이 충분히 읽힌다.
4명의 전직 총리와 4명의 전직 교육부장관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 단체의 태동을 보며 두 가지 생각에 잠긴다.우선,‘안티’의 대상이 될 정도로 ‘권력화’혐의를 받고 있는 전교조.10여년 전 출범 당시 전교조는 체제의 억압을 받았지만 참교육과 교단의 민주화란 대의 명분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그러나 합법적 지위와 우호적 정부의 우산 아래 툭하면 학생들의 학습권을 압박 수단으로 들고 나오는 오늘날의 행태는 교육자단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이익단체와 다를 바 없이 비쳐지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교시련이 내놓은 ‘교육공동체 회복’이란 명분의 진정성.이상주 대표 내정자는 지난 3월 부총리직에서 물러난 이래 ‘사사건건 교육개혁에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자기모순적 집단’‘전교조는 하이에나 떼와 같다.’는 등의 감정 섞인 독설을 쏟아 왔다.그는 특히 지난 5월 교단갈등 해소를 위한 교장단회의에서는 전교조를 ‘증오심에 불타는 투사’들로 몰아붙여 교단 갈등을 오히려 조장한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교시련의 ‘안티’성이 교육공동체 회복의 역할을 할지,교단 분열이나 보수·진보 힘겨루기의 또 다른 양상으로 확대될지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시민들은 더이상 교단이 분열의 회오리에 휩쓸리지 않기를 원한다.전교조도 ‘안티 전교조’도 ‘참교육’이란 공통분모를 내세웠다.그 실천을 시민들이 지켜볼 것이다.
신연숙 논설위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반대하는 ‘안티 전교조’ 시민단체 ‘교육공동체시민연합’(교시련)이 생긴다고 한다.내놓고 밝힌 것은 아니지만 전교조에 대항할 시민단체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역설해온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가 상임공동대표로 내정됐고 창립선언문에서 ‘특정 교직단체’의 ‘편향적 의식화’교육을 비판하며 ‘민주적이고 조화로운 교육공동체’ 회복을 내세운 데서 ‘안티 전교조’적 성격이 충분히 읽힌다.
4명의 전직 총리와 4명의 전직 교육부장관 등 거물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이 단체의 태동을 보며 두 가지 생각에 잠긴다.우선,‘안티’의 대상이 될 정도로 ‘권력화’혐의를 받고 있는 전교조.10여년 전 출범 당시 전교조는 체제의 억압을 받았지만 참교육과 교단의 민주화란 대의 명분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그러나 합법적 지위와 우호적 정부의 우산 아래 툭하면 학생들의 학습권을 압박 수단으로 들고 나오는 오늘날의 행태는 교육자단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이익단체와 다를 바 없이 비쳐지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다.
다음으로 교시련이 내놓은 ‘교육공동체 회복’이란 명분의 진정성.이상주 대표 내정자는 지난 3월 부총리직에서 물러난 이래 ‘사사건건 교육개혁에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자기모순적 집단’‘전교조는 하이에나 떼와 같다.’는 등의 감정 섞인 독설을 쏟아 왔다.그는 특히 지난 5월 교단갈등 해소를 위한 교장단회의에서는 전교조를 ‘증오심에 불타는 투사’들로 몰아붙여 교단 갈등을 오히려 조장한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교시련의 ‘안티’성이 교육공동체 회복의 역할을 할지,교단 분열이나 보수·진보 힘겨루기의 또 다른 양상으로 확대될지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시민들은 더이상 교단이 분열의 회오리에 휩쓸리지 않기를 원한다.전교조도 ‘안티 전교조’도 ‘참교육’이란 공통분모를 내세웠다.그 실천을 시민들이 지켜볼 것이다.
신연숙 논설위원
2003-06-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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