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보성초등 르포 / 교사도 학부모도 ‘그늘’ “한식구 같던 시절 올지…”

‘스승의 날’ 보성초등 르포 / 교사도 학부모도 ‘그늘’ “한식구 같던 시절 올지…”

입력 2003-05-15 00:00
수정 2003-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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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예전 일은 모두 잊고….”

서승목 교장의 자살사건으로 교사와 학생·학부모 모두 한달 넘는 동안 마음고생을 했던 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학교 입구에는 ‘하늘같은 스승의 은혜’를 기념하는 감회에 젖을 시간도 없이 ‘동문 체육대회와 효도잔치’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었다.

예년 같으면 교사와 학부모가 한 조가 되어 음료수와 먹을 거리를 준비하며 즐겁게 보내야 할 시간이었다.

지난달 18일 새로 부임한 윤웅섭 교감은 “아직도 왜 우리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며 밀려드는 공문을 결재하느라 바쁜 낮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 안을 오가는 교사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래서인지 누구에게도 쉽게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웠다.윤 교감은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그냥 가만히 내버려 달라며,애써 잊고 싶은 기억인데 괜한 생채기만 내는 것 아니냐며 손사래를 쳤다.

교무실 한 구석에는 이번 사건을 겪은 뒤 어느 의사가 보내줬다는 커피 자판기가 눈에 띄었다.

연구부장을 맡고 있는 안태원 교사는 2교시를 마치고 난 뒤 아이들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며 ‘중간놀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안 교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번 스승의 날은 우리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날이 돼야 한다.”면서 “스승이 무엇인지,내가 아이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지 생각해보는 시간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전교생 60명에 교직원 13명이 밝게 어울려 뒹굴던 작은 시골학교.갑자기 닥친 큰일로 누구보다 힘들었던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안 교사는 안쓰러운 생각 뿐이다.

학부모들의 아픔도 마찬가지다.지난해 학교운영위원장을 맡았던 김정도씨는 “더 이상 언론과 접촉하기 싫다.”며 “괴롭다.”는 말만 거듭했다.벼농사와 과수원 일도 팽개치고 이번 사건에 뛰어들었던 김씨였다.

20년째 학교 앞에서 한과공장을 운영하는 남진우씨는 5년전 첫 아이가 보성초등학교에 다닐 때를 떠올리며 “한 식구같이 지냈던 마을이었다.”면서 “스승의 날이면 같이 선생님들과 점심도 먹고 체육대회도 하며 사이좋게 지냈는데 다시 그런 시간이 올 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4학년 학부모인 보성보건소 임순희 소장은 훌훌 털고 싶다는 말부터 꺼냈다.

임씨는 스승의 날에 일일 명예교사를 맡아 교단에 설 작정이다.임씨는 “비록 큰일을 겪은 학교지만 스승의 날은 변함없이 교사에 대한 존경심을 가져야 하는 날이 아니냐.”며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전했다.

30여년 전 주민들이 쌀봉투를 모아 만들었다는 ‘밤나무골’의 소중한 터전이었던 보성초등학교.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으로 아이들은 정든 선생님과 이별을 해야했고 수업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안타까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제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학부모·어린이들 모두는 아픔을 딛고 조금씩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산 구혜영기자 koohy@
2003-05-1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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