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저녁 산행

[길섶에서] 저녁 산행

양승현 기자 기자
입력 2003-05-10 00:00
수정 2003-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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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무렵 진달래 능선을 따라 북한산 대동문에 올랐다.성곽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야경은 낮의 부끄러움을 모두 감추고 아름다움으로 다가섰다.그렇게 저녁 산행이 주는 정취에 한동안 취해있다가 내려왔다.

오를 때는 들리지 않던 계곡의 물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대낮 같으면 그냥 스쳐 지나갈 산의 온갖 미세한 소리가 예민해진 청각에 모두 잡혔다.어둠이 빚어낸 기기묘묘한 형태의 산 그림자에 속으로는 수없이 놀라 자꾸만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신 없이 하산하다 고개를 드니 화려한 야경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왔다.그러고 보니 1시간가량 동행한 친구와 아무 말도 않고 쉴 새 없이 걷기만 한 것이다.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텅 비워져버린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다.첫 저녁 산행의 일탈이 내게 가져다준 묘미였다.

하잘 것 없는 일처럼 보여도 곱씹어보면 다 그 값어치와 쓰일 데가 있다고 하더니,정말 그런 모양이다.평범한 우리들의 일상도 그런 의미의 연속일 터.

양승현 논설위원

2003-05-1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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