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이 울릴 때마다 휴대전화를 반짝거리게 하는 ‘튜닝’이 유행이래.대리점에 맡기고 갈 테니 먼저 들어가.”
“남자 망신 다 시킨다니까.잘 걸리기만 하면 됐지,치장은 무슨…”
돛대처럼 우뚝 솟은 두 사내가 2일 모교인 서울 명지고 앞에서 휴대전화 액세서리 문제로 티격태격한다.어느새 이들은 사인을 받기 위해 달려온 ‘키 작은’ 후배들에게 파묻혔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으로 ‘고공농구’를 선보인 한기범(205㎝)과 김유택(197㎝).영원한 ‘쌍돛대’로 남을 것만 같던 이들도 어느덧 불혹이 됐다.호적상으로는 김유택이 한 살 많고,실제로는 동갑(40)이다.그러나 1년 선배인 한기범이 언제나 형이다.
●동반자이자 라이벌
만남은 김유택이 지난 80년 명지고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김유택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농구부에 발탁됐고,외롭게 골 밑을 지키던 2년생 한기범은 단박에 이 신입생이 동반자가 될 것을 직감했다.
둘은 중앙대-기아로 이어지는 코스를 1년 터울로 밟았다.한기범이 96년 은퇴할 때까지 15년 동안이나 한솥밥을 먹었다.전성기인 83년부터 10년 간은 태극마크도 함께 달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언제나 라이벌 의식이 팽팽하게 흘렀다.연습이 끝나도 둘은 항상 코트에 남았다.먼저 등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늦게까지 남기 경쟁에서는 항상 김유택이 이겼다.한기범은 “내가 먼저 연습장을 떠나지 않으면 유택이는 밤을 꼬박 새울 태세였다.”고 말했다.
이들이 맞붙은 적은 딱 한번 있다.86∼87농구대잔치에서 기아의 유니폼을 입은 한기범과 허재(38·TG) 강동희(37·LG)와 중앙대 ‘허·동·택’ 트리오를 이룬 김유택이 센터 대결을 벌였다.접전 끝에 김유택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서로 다른 ‘제2의 인생’
한기범은 방송인·사업가로,김유택은 모교 농구부 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이들은 “아직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기범은 코믹한 모습으로 방송에 자주 등장한 데다 큰 키 때문에 어디에 가든 사람들이 쉽게 알아 본다.여자 후배들이 키를 재보자고 졸졸 따라다니자 황급히 승용차 안으로 숨어버린 그는 “명동거리에 나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며 빙그레 웃었다.
싱거워 보이지만 ‘한기범의 키 크는 교실’을 운영하고,성장을 촉진시키는 건강보조식품을 개발·판매하는 벤처기업의 대표이사다.한기범은 “농구밖에 몰랐던 내가 이제야 세상이 무서운 줄 알았다.”면서 “길을 잘 닦아 후일 유택이와 함께 사업을 번창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김유택은 아직 농구라는 ‘솔잎’을 먹는다.감독으로 부임한지 불과 6개월만인 지난 3월 명지고를 40년 역사의 봄철연맹전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명지고의 전국 제패는 98년 쌍용기대회 이후 5년만이다.은퇴 뒤 프로무대에서 코치로 활약한 김유택이 수입이 절반에 불과한 모교 감독직을 수락한 것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아직 현역인 후배 허재와 강동희를 보면 가슴이 찡하다.지난달 02∼03시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지존’을 놓고 맞대결을 펼친 두 후배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안타까웠다.
김유택은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먹으면서 “기범이 형이 심장수술을 해 건강이 좋지 않다.”며 걱정을 했다.김유택이 먼저 자리를 뜨자 한기범은 “나보다는 유택이가 더 부각될 수 있도록 써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그들의 우정은 키만큼이나 높아 보였다.
글 이창구기자 window2@ 사진 강성남기자 snk@
■키 큰것 빼고는 천양지차
땀에 젖은 운동복 속에서 15년을 함께 뒹군 한기범과 김유택은 키가 크다는 것 말고는 사뭇 다르다.
우선 성격이 천양지차다.한기범은 소탈하고 유연하지만,김유택은 한마디로 ‘칼’ 같다.이 때문에 대학 때 후배들은 1년 선배인 한기범보다는 김유택을 훨씬 어려워했다.
느긋한 성격 탓에 한기범은 슬럼프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다음에는 잘 되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승부욕이 강한 김유택은 달랐다.경기에서 지는 날이면 잠을 설치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불 같은 성정으로 운동을 포기하려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두 사람의 승용차를 보면 취향을 단박에 알 수 있다.세심한 한기범은 승용차에 온갖 치장을 다했다.김유택의 밴 내부에는 주유소에서 준 화장지 통이 장식물의전부다.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한기범은 양식을 좋아하지만 김유택은 된장찌개 등 한식을 즐긴다.
아들 둘을 나란히 둔 이들은 자식에 대한 기대도 다르다.한기범은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라고,김유택은 절대 운동선수로는 키우지 않겠단다.두 꺽다리는 “농구가 아니었다면 함께 어울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다르기 때문에 더 각별하다.”고 말했다.
“남자 망신 다 시킨다니까.잘 걸리기만 하면 됐지,치장은 무슨…”
돛대처럼 우뚝 솟은 두 사내가 2일 모교인 서울 명지고 앞에서 휴대전화 액세서리 문제로 티격태격한다.어느새 이들은 사인을 받기 위해 달려온 ‘키 작은’ 후배들에게 파묻혔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국내에 처음으로 ‘고공농구’를 선보인 한기범(205㎝)과 김유택(197㎝).영원한 ‘쌍돛대’로 남을 것만 같던 이들도 어느덧 불혹이 됐다.호적상으로는 김유택이 한 살 많고,실제로는 동갑(40)이다.그러나 1년 선배인 한기범이 언제나 형이다.
●동반자이자 라이벌
만남은 김유택이 지난 80년 명지고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됐다.김유택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농구부에 발탁됐고,외롭게 골 밑을 지키던 2년생 한기범은 단박에 이 신입생이 동반자가 될 것을 직감했다.
둘은 중앙대-기아로 이어지는 코스를 1년 터울로 밟았다.한기범이 96년 은퇴할 때까지 15년 동안이나 한솥밥을 먹었다.전성기인 83년부터 10년 간은 태극마크도 함께 달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언제나 라이벌 의식이 팽팽하게 흘렀다.연습이 끝나도 둘은 항상 코트에 남았다.먼저 등을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늦게까지 남기 경쟁에서는 항상 김유택이 이겼다.한기범은 “내가 먼저 연습장을 떠나지 않으면 유택이는 밤을 꼬박 새울 태세였다.”고 말했다.
이들이 맞붙은 적은 딱 한번 있다.86∼87농구대잔치에서 기아의 유니폼을 입은 한기범과 허재(38·TG) 강동희(37·LG)와 중앙대 ‘허·동·택’ 트리오를 이룬 김유택이 센터 대결을 벌였다.접전 끝에 김유택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서로 다른 ‘제2의 인생’
한기범은 방송인·사업가로,김유택은 모교 농구부 감독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이들은 “아직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기범은 코믹한 모습으로 방송에 자주 등장한 데다 큰 키 때문에 어디에 가든 사람들이 쉽게 알아 본다.여자 후배들이 키를 재보자고 졸졸 따라다니자 황급히 승용차 안으로 숨어버린 그는 “명동거리에 나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며 빙그레 웃었다.
싱거워 보이지만 ‘한기범의 키 크는 교실’을 운영하고,성장을 촉진시키는 건강보조식품을 개발·판매하는 벤처기업의 대표이사다.한기범은 “농구밖에 몰랐던 내가 이제야 세상이 무서운 줄 알았다.”면서 “길을 잘 닦아 후일 유택이와 함께 사업을 번창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김유택은 아직 농구라는 ‘솔잎’을 먹는다.감독으로 부임한지 불과 6개월만인 지난 3월 명지고를 40년 역사의 봄철연맹전 첫 우승으로 이끌었다.명지고의 전국 제패는 98년 쌍용기대회 이후 5년만이다.은퇴 뒤 프로무대에서 코치로 활약한 김유택이 수입이 절반에 불과한 모교 감독직을 수락한 것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아직 현역인 후배 허재와 강동희를 보면 가슴이 찡하다.지난달 02∼03시즌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지존’을 놓고 맞대결을 펼친 두 후배의 모습은 아름답고도 안타까웠다.
김유택은 점심으로 김치볶음밥을 먹으면서 “기범이 형이 심장수술을 해 건강이 좋지 않다.”며 걱정을 했다.김유택이 먼저 자리를 뜨자 한기범은 “나보다는 유택이가 더 부각될 수 있도록 써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그들의 우정은 키만큼이나 높아 보였다.
글 이창구기자 window2@ 사진 강성남기자 snk@
■키 큰것 빼고는 천양지차
땀에 젖은 운동복 속에서 15년을 함께 뒹군 한기범과 김유택은 키가 크다는 것 말고는 사뭇 다르다.
우선 성격이 천양지차다.한기범은 소탈하고 유연하지만,김유택은 한마디로 ‘칼’ 같다.이 때문에 대학 때 후배들은 1년 선배인 한기범보다는 김유택을 훨씬 어려워했다.
느긋한 성격 탓에 한기범은 슬럼프라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다음에는 잘 되겠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그러나 승부욕이 강한 김유택은 달랐다.경기에서 지는 날이면 잠을 설치며 복수의 칼을 갈았다.불 같은 성정으로 운동을 포기하려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두 사람의 승용차를 보면 취향을 단박에 알 수 있다.세심한 한기범은 승용차에 온갖 치장을 다했다.김유택의 밴 내부에는 주유소에서 준 화장지 통이 장식물의전부다.좋아하는 음식도 다르다.한기범은 양식을 좋아하지만 김유택은 된장찌개 등 한식을 즐긴다.
아들 둘을 나란히 둔 이들은 자식에 대한 기대도 다르다.한기범은 아들이 자신의 뒤를 잇기를 바라고,김유택은 절대 운동선수로는 키우지 않겠단다.두 꺽다리는 “농구가 아니었다면 함께 어울리기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다르기 때문에 더 각별하다.”고 말했다.
2003-05-0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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