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번역어 성립 사정

책 / 번역어 성립 사정

입력 2003-04-09 00:00
수정 2003-04-09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야나부 아키라 지음 서혜영 옮김 / 일빛 펴냄

‘문화적 주체성’이나 ‘민족 정체성’을 심각하게 따지는 독자에게 ‘번역어 성립 사정’(야나부 아키라 지음,서혜영 옮김,일빛 펴냄)은 다분히 충격적일 수 있다.일제시대를 거치며 우리말 번역이 일본식을 여과없이 그대로 따른 문제점은 널리 지적돼온 터.그러나 이 책은 ‘사회’‘개인’‘근대’‘미’‘연애’‘존재’ 등 우리가 거리낌 없이 순수국어로 알고 써온 단어들조차 일본 에도(江戶) 말기(1603∼1867)부터 메이지(明治·1868∼1912)시대에 번역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란 사실을 알려준다.물론 책은 일본인의 관점에서 조명됐다.학문과 사상분야의 필수용어들이 당시 사회 구성원들의 어떠한 지적 투쟁을 거쳐 탄생했으며 일본인들의 사고틀을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추적하는 데 초점을 모았다.야나부 아키라는 번역 문제를 비교문화론의 쟁점으로 끌어올려 주목받는 일본인 학자.그러나 그는 단지 번역어의 ‘질’과 적합성을 따지고자 책을 쓰진 않았다.그는 번역어를 “‘근대’의 문제이자 ‘사상’의 문제로 다시 보자.”고 주장한다.그들을 무비판적으로 갖다쓴 한국도 당연히 같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예컨대 일본어 번역이 난감했던 대표적인 영어 ‘소사이어티(Society)’.개인단위의 인간집합을 뜻하는 단어가 원래 일본에는 없었다.1847년 ‘회(會)’와 ‘결사(結社)’로 옮겨지다,‘일정한 목적을 지닌 사람들의 모임’의 뜻으로 쓰이던 기존 일본어 ‘사(社)’자와 결합해 결국 ‘사회(社會)’로 굳어진 것.일본의 근대성을 그대로 반영해 탄생한 언어인 셈이다.1만원.

황수정기자

2003-04-09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