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말 자체가 없는 나라,남편도 아버지도 없는 나라.그곳에 우리를 데리고 가려고 차에 오른 모소인 아가씨는 그야말로 생기발랄한 모습이었다.
햇빛과 바람에 그을린 뺨이 붉어질 때는 순박한 아름다움이란 저런 것이구나 감탄할 정도로 건강미가 넘쳤다.우리 일행은 리장을 떠나 한계령보다 더 심하게 꺾이고 또 휘어진 길을 달리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중국 서남부 윈난성 깊은 오지에서 아직도,21세기에도 모계사회의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모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소인들이 사는 집은 대부분 규모가 꽤 큰 편이다.많게는 한가족이 40∼50명에 이르는 대가족이 한집에 살기 때문이다.
모소말로 ‘에쓰’라고 불리는 어머니가 통치하는 이 가족공동체는 결혼제도가 없기 때문에 아들이나 딸이나 평생을 한 집에서 함께 살며 누이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 역할은 말하자면 외삼촌이 하게 되는 것이다.에쓰의 지시에 따라 밥먹고 일하고 돈을 벌면 에쓰에게 드리고….어떻게 보면 정말 걱정 근심 없이 마음 편하게 일평생 살 수 있을 것같기도 하다.
밤이 되면 남자는 연인의 집 담을 넘어 놀다가 새벽녘 다시 담을 넘어 돌아와야 한다.장모와 마주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버스가 시끌벅적할 정도로 질문이 쏟아진다.아무 담이나 넘어가도 되느냐,다른 남자가 와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모두들 카사노바라도 될 모양으로 좋아 했지만 결혼이 없다고 해도 계약이 없을 뿐 오히려 합리적인 질서가 있다.
남녀가 좋아지면 서로 사인을 보내고 만나게 되며 지속적으로 만나다가 싫어지면 그것으로 끝내게 된다.평생 1:1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혼이니 위자료니 필요 없고,아이를 네가 키우니 내가 키우니 싸우지 않아도 되고,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상처 줄 일 없어 좋다.
모소인 마을은 여인들의 에너지로 활기가 넘쳤다.아가씨들의 튕겨나갈 듯한 활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삶을 손아귀에 꽉 틀어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거칠 것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 있었다.
나 같은 사람도 그들의 무공해 자연산 매력에 빨려드는데 남자들은 거의 넋이 나간 듯했다.이윽고 누군가 “여기서 살 테야.마음 좋은 에쓰에게 날 입양해 달라고 졸라 보겠어.가족 먹여 살릴 걱정,회사 걱정 안 해도 되고 공기 좋고 맘 편하고 얼마나 좋아.”하며 털어 놓는다.푸념하듯이. 만약 그의 농담이 실현된다면 어떻게 될까? 책임과 의무에 등이 휘고 저녁엔 술에 절어 고개를 떨구고 휘적휘적 집에 돌아가던 일상 대신 정말 팔자가 필까? 얼마동안이나 갈등 없이 살 수 있을까.
그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가부장제도의 망령들이 살아나 그의 마음을 할퀴고 뒤흔들어 괴로울 것이다.우주가 더 이상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이제는 담 넘을 일이 없을 듯 보이던 술 취한 모소인 아저씨의 ‘꼬장’ 부리던 모습이 이 대목에서 떠오른다.
여행의 매력은 발상을 전환시켜 준다는 것이다.논밭을 갈아엎을 이 계절에 우리들 지루한 일상과 답답한 인습을 갈아엎어 새로운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한달만 모소인의 제도를 빌려오면 어떨까.아내를 여왕처럼 모시는 대신 모든 것을 책임지라 하고,명령만 하시라고 무조건 따르겠다고 하면? 한동안싸울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김 혜 경 도서출판 푸른숲 대표
햇빛과 바람에 그을린 뺨이 붉어질 때는 순박한 아름다움이란 저런 것이구나 감탄할 정도로 건강미가 넘쳤다.우리 일행은 리장을 떠나 한계령보다 더 심하게 꺾이고 또 휘어진 길을 달리며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중국 서남부 윈난성 깊은 오지에서 아직도,21세기에도 모계사회의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모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모소인들이 사는 집은 대부분 규모가 꽤 큰 편이다.많게는 한가족이 40∼50명에 이르는 대가족이 한집에 살기 때문이다.
모소말로 ‘에쓰’라고 불리는 어머니가 통치하는 이 가족공동체는 결혼제도가 없기 때문에 아들이나 딸이나 평생을 한 집에서 함께 살며 누이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 역할은 말하자면 외삼촌이 하게 되는 것이다.에쓰의 지시에 따라 밥먹고 일하고 돈을 벌면 에쓰에게 드리고….어떻게 보면 정말 걱정 근심 없이 마음 편하게 일평생 살 수 있을 것같기도 하다.
밤이 되면 남자는 연인의 집 담을 넘어 놀다가 새벽녘 다시 담을 넘어 돌아와야 한다.장모와 마주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버스가 시끌벅적할 정도로 질문이 쏟아진다.아무 담이나 넘어가도 되느냐,다른 남자가 와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모두들 카사노바라도 될 모양으로 좋아 했지만 결혼이 없다고 해도 계약이 없을 뿐 오히려 합리적인 질서가 있다.
남녀가 좋아지면 서로 사인을 보내고 만나게 되며 지속적으로 만나다가 싫어지면 그것으로 끝내게 된다.평생 1:1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혼이니 위자료니 필요 없고,아이를 네가 키우니 내가 키우니 싸우지 않아도 되고,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상처 줄 일 없어 좋다.
모소인 마을은 여인들의 에너지로 활기가 넘쳤다.아가씨들의 튕겨나갈 듯한 활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삶을 손아귀에 꽉 틀어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거칠 것 없는 생명력이 그들에게 있었다.
나 같은 사람도 그들의 무공해 자연산 매력에 빨려드는데 남자들은 거의 넋이 나간 듯했다.이윽고 누군가 “여기서 살 테야.마음 좋은 에쓰에게 날 입양해 달라고 졸라 보겠어.가족 먹여 살릴 걱정,회사 걱정 안 해도 되고 공기 좋고 맘 편하고 얼마나 좋아.”하며 털어 놓는다.푸념하듯이. 만약 그의 농담이 실현된다면 어떻게 될까? 책임과 의무에 등이 휘고 저녁엔 술에 절어 고개를 떨구고 휘적휘적 집에 돌아가던 일상 대신 정말 팔자가 필까? 얼마동안이나 갈등 없이 살 수 있을까.
그의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가부장제도의 망령들이 살아나 그의 마음을 할퀴고 뒤흔들어 괴로울 것이다.우주가 더 이상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이제는 담 넘을 일이 없을 듯 보이던 술 취한 모소인 아저씨의 ‘꼬장’ 부리던 모습이 이 대목에서 떠오른다.
여행의 매력은 발상을 전환시켜 준다는 것이다.논밭을 갈아엎을 이 계절에 우리들 지루한 일상과 답답한 인습을 갈아엎어 새로운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한달만 모소인의 제도를 빌려오면 어떨까.아내를 여왕처럼 모시는 대신 모든 것을 책임지라 하고,명령만 하시라고 무조건 따르겠다고 하면? 한동안싸울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김 혜 경 도서출판 푸른숲 대표
2003-04-09 1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