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드니에서의 일이다.흔히 하던 식으로 예약된 호텔에 방을 잡기 위해 장시간의 수속을 마친 후,피곤한 몸을 이끌고 승강기를 탔다.무심코 승강기내의 층수 단추판을 보는 순간 욕이 절로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단추판들이 상당히 낮게 부착되어 있어서 원하는 층의 단추를 누르려면 허리를 굽혀야만 했기 때문이다.무궁화 다섯 개 정도의 일류호텔에 승강기 단추를 손님의 편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제 맘대로 붙여 놓은 호주사람들의 몰지각한 배려가 몹시 짜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삼일간의 회의 일정을 마치고 주최 측의 배려로 올림픽경기장 관람을 하게 되었다.관람객의 수에 따라 의자수를 조정할 수 있는 올림픽 주경기장과 태양열을 이용한 수영경기장,교통체증을 막고 대기오염도 줄이겠다는 의도로 모든 관람객을 기차로 수송하기 위해 만든 기차역 등을 흥미있게 보았다.
호주인들이 가장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올림픽 이후의 경기장 시설 재활용이었다.텅 빈 시설을 그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모든 시설을 축소 조정하여 관리비 부담을 줄이고 나머지 시설은 주변지역에 공개하기로 하였다고 한다.참 합리적인 생각이다.
여기저기를 다니던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시설물을 발견하게 되었다.바로 음료자판기와 공중전화 시설이었다.정상인이 이용하기에는 모두 너무 낮게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마침 휠체어에 탄 한 장애자가 자연스럽게 자판기에 접근하여 음료수를 꺼내 마시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그것도 전혀 남의 도움도 없이.시드니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호텔에 방을 잡기까지 장시간이 소요되어 짜증스럽던 것부터 승강기의 단추가 낮게 부착된 것에 불편함만을 토로하던 나의 얼굴이 그만 홍당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경우 웬만한 공공건물의 승강기에는 두 개의 단추판이 마련되어 있다.심하게는 세 개의 단추판이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한쪽은 정상인용이고 다른 한쪽은 장애인용이다.그러나 그 뜻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는 장애인에 대한 정상인들의 특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장애인 복지를 외쳐대는 우리의 태도는 장애인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주자는 것이다.그러나 장애인들에게는 그러한 특별한 배려가 고맙기는 하지만,정작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특별한 배려보다는 장애인과 정상인이 모두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구태여 장애인용 단추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단추를 조금 낮게 부착하면,내가 장애인이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서도 이용이 가능하게 된다.
한편,경제적인 이득도 생각해 볼 수 있다.두개 이상의 층수 단추판을 만들어 달기보다는 하나의 단추판을 조금 낮게 달면 상당한 제작단가의 절감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그러나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냐.”하고 되물을지도 모른다.“요즘처럼 소비자가 왕인 세상에,조금이라도 소비자의 편리함을 제공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하고 반응을 보일 수 있다.소비자가 왕인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사용가능한 자원은 무한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석유 때문에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도,자원은 소중히 아껴 써야만 한다.이런 점에서 정상인과 소비자 그리고 힘의 강자가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마련된다면 훨씬 훈훈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이렇게 세심한 부분까지를 생각하며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실천하는 호주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요즈음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행정서비스헌장제도’에 이같은 사업을 채택한다면 우리에게도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꿈만은 아니라는 기대를 해본다.
박 우 서 연세대 교수 도시행정학
삼일간의 회의 일정을 마치고 주최 측의 배려로 올림픽경기장 관람을 하게 되었다.관람객의 수에 따라 의자수를 조정할 수 있는 올림픽 주경기장과 태양열을 이용한 수영경기장,교통체증을 막고 대기오염도 줄이겠다는 의도로 모든 관람객을 기차로 수송하기 위해 만든 기차역 등을 흥미있게 보았다.
호주인들이 가장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는 것은 올림픽 이후의 경기장 시설 재활용이었다.텅 빈 시설을 그대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모든 시설을 축소 조정하여 관리비 부담을 줄이고 나머지 시설은 주변지역에 공개하기로 하였다고 한다.참 합리적인 생각이다.
여기저기를 다니던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시설물을 발견하게 되었다.바로 음료자판기와 공중전화 시설이었다.정상인이 이용하기에는 모두 너무 낮게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마침 휠체어에 탄 한 장애자가 자연스럽게 자판기에 접근하여 음료수를 꺼내 마시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그것도 전혀 남의 도움도 없이.시드니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호텔에 방을 잡기까지 장시간이 소요되어 짜증스럽던 것부터 승강기의 단추가 낮게 부착된 것에 불편함만을 토로하던 나의 얼굴이 그만 홍당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경우 웬만한 공공건물의 승강기에는 두 개의 단추판이 마련되어 있다.심하게는 세 개의 단추판이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한쪽은 정상인용이고 다른 한쪽은 장애인용이다.그러나 그 뜻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는 장애인에 대한 정상인들의 특별한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장애인 복지를 외쳐대는 우리의 태도는 장애인에게 특별한 배려를 해주자는 것이다.그러나 장애인들에게는 그러한 특별한 배려가 고맙기는 하지만,정작 그들이 원하는 것은 특별한 배려보다는 장애인과 정상인이 모두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구태여 장애인용 단추를 따로 만들기보다는 단추를 조금 낮게 부착하면,내가 장애인이라는 의식을 하지 않고서도 이용이 가능하게 된다.
한편,경제적인 이득도 생각해 볼 수 있다.두개 이상의 층수 단추판을 만들어 달기보다는 하나의 단추판을 조금 낮게 달면 상당한 제작단가의 절감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그러나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냐.”하고 되물을지도 모른다.“요즘처럼 소비자가 왕인 세상에,조금이라도 소비자의 편리함을 제공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떨어지는데.” 하고 반응을 보일 수 있다.소비자가 왕인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사용가능한 자원은 무한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이라크에서는 석유 때문에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도,자원은 소중히 아껴 써야만 한다.이런 점에서 정상인과 소비자 그리고 힘의 강자가 조금만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의 자세가 마련된다면 훨씬 훈훈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이렇게 세심한 부분까지를 생각하며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묵묵히 실천하는 호주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요즈음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행정서비스헌장제도’에 이같은 사업을 채택한다면 우리에게도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꿈만은 아니라는 기대를 해본다.
박 우 서 연세대 교수 도시행정학
2003-04-0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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