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새비지(Timothy Savage·37)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인생에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의 영향이 컸다.커밍스 교수는 1981년 당시 한국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피력한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한반도 전문가이다.대학 시절 주위에 한국 친구들이 많은데도 역사전공인 자신이 한국 역사를 모른다는 생각에 커밍스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그런데 흥미를 느껴 더 공부를 했고 전공이 한반도로 바뀌었다.
92년 하와이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운 그는 1994년부터 2년 동안 정신문화연구원에 근무했었다.당시 한국어 실력이 달려 애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옆 사무실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와 나한테 뭐라 고함을 지르고 사라졌는데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죠.”
새비지는 이후 틈틈이 한국을 왕래하며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그리고 지난해 9월 한국에 다시 왔고 올 연말까지 이 곳에 머물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전기를 완성할 계획이다.
역사를 전공한 그는 20세기의 한국 역사가 한국인들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강대국들에 의해 남북이 나뉘고 한국전쟁까지 겪어 한국인들은 한국의 역사를 결정지어왔던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몇몇 국가에만 시선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또 “외부세력에 대해 약간의 반감,민족주의에 대한 방어적인 자세”도 역사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그러나 이런 경향이 반갑게도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비지는 최근 불고 있는 반미감정을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미국인 개인을 향해 표출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미국인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데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되거나 공격을 받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대표적인 예로 ‘미국인 출입 금지’ 간판을 건 음식점을 예로 들었다.새비지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이다.
그는 환경·안보연구기관인 노틸러스 연구소에 근무하던 2000년 풍력발전소 지원 문제로 북한을 2주 정도 다녀왔다.농촌 지역을 주로 다녔는데 모든 일들이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고 어디든 걸어가는 사람들,거의 보이지 않는 차량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서울에 돌아와 사진을 현상하러 롯데백화점에 바로 갔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모습에 한 순간 공황 상태를 겪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남북한의 대비는 너무 극명했다.
근 10년 동안 한국을 오가면서 느낀 가장 큰 발전상은 인터넷의 발달이다.일의 대부분을 이메일로 진행·처리하는 새비지는 인터넷 사용에 있어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세계 곳곳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알 수 있는 것도 큰 도움이다.
이제 한국어 음식과 대중교통에도 익숙해졌다.그래도 여전히 보신탕과 산 낙지만은 ‘노’다.보신탕은 10년 전쯤 동료들이 소고기라고 속여 한번 먹어 봤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산 낙지 또한 먹는 순간까지 음식이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전경하기자 lark3@
92년 하와이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운 그는 1994년부터 2년 동안 정신문화연구원에 근무했었다.당시 한국어 실력이 달려 애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옆 사무실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와 나한테 뭐라 고함을 지르고 사라졌는데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죠.”
새비지는 이후 틈틈이 한국을 왕래하며 서울대와 연세대 등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그리고 지난해 9월 한국에 다시 왔고 올 연말까지 이 곳에 머물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전기를 완성할 계획이다.
역사를 전공한 그는 20세기의 한국 역사가 한국인들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한다.강대국들에 의해 남북이 나뉘고 한국전쟁까지 겪어 한국인들은 한국의 역사를 결정지어왔던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몇몇 국가에만 시선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또 “외부세력에 대해 약간의 반감,민족주의에 대한 방어적인 자세”도 역사의 영향이라고 지적했다.그러나 이런 경향이 반갑게도 최근에는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새비지는 최근 불고 있는 반미감정을 이해는 하지만 그것이 미국인 개인을 향해 표출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미국인이 미국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데도 미국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되거나 공격을 받는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대표적인 예로 ‘미국인 출입 금지’ 간판을 건 음식점을 예로 들었다.새비지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이다.
그는 환경·안보연구기관인 노틸러스 연구소에 근무하던 2000년 풍력발전소 지원 문제로 북한을 2주 정도 다녀왔다.농촌 지역을 주로 다녔는데 모든 일들이 사람의 손으로 이뤄지고 어디든 걸어가는 사람들,거의 보이지 않는 차량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서울에 돌아와 사진을 현상하러 롯데백화점에 바로 갔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는 모습에 한 순간 공황 상태를 겪었다.”고 회상할 정도로 남북한의 대비는 너무 극명했다.
근 10년 동안 한국을 오가면서 느낀 가장 큰 발전상은 인터넷의 발달이다.일의 대부분을 이메일로 진행·처리하는 새비지는 인터넷 사용에 있어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세계 곳곳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알 수 있는 것도 큰 도움이다.
이제 한국어 음식과 대중교통에도 익숙해졌다.그래도 여전히 보신탕과 산 낙지만은 ‘노’다.보신탕은 10년 전쯤 동료들이 소고기라고 속여 한번 먹어 봤지만 영 내키지 않는다.산 낙지 또한 먹는 순간까지 음식이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전경하기자 lark3@
2003-03-3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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