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화 詞伯을 보내며 “이젠 ‘고독’ 없는 세상에서 편히 잠드소서”

조병화 詞伯을 보내며 “이젠 ‘고독’ 없는 세상에서 편히 잠드소서”

입력 2003-03-10 00:00
수정 2003-03-1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팔순을 넘기고도 평생 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젊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더니 작년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노쇠의 징후를 보여 주위의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고 급기야 새해를 맞자 입원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훌훌 떠나실 줄은 몰랐습니다.적은 연세는 아니지만 장수하는 시대이고 특히 평생 젊게 살아오신 터라 갑작스런 부음(訃音)이 놀랍고 애석할 따름입니다.

몇 가지 점에서 사백(詞伯)은 한국문단에서 특별한 분이었습니다.

첫째,사백은 다재다능한 분입니다.일제시대에 수재가 아니고는 들어갈 수 없었던 경성사범학교와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사시절의 전공이 이과(理科)였으면서도 시를 쓰고 대학에서 시를 가르쳤습니다.게다가 그림에서도 남다른 재질을 보였으며 학생시절에는 럭비선수였을 만큼 스포츠에서도 뛰어난 소질을 가졌던 것입니다.

둘째,사백은 우리 현대시단에서 시집을 가장 많이 낸 분입니다.신간시집과 시선집을 쉰권 넘게 낸 시인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아마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 것입니다.다작이 반드시 시인의 미덕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집을 그렇게 많이 냈다는 사실은 적어도 시인의 시에 대한 열정과,시를 그대로 생활화했음을 의미합니다.이 점에서 사백은 우리 시단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사백은 겉으로 드러난 바에 있어서는 이 땅에서 아마 고독을 가장 사랑한 시인이었을지 모릅니다.시란 원래 고독한 정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시인 치고 자기 나름의 고독을 누리지 않는 경우는 없겠지만 사백은 남달리 그것을 의식하고 자주 언급한 분입니다.

겉보기에는 술을 좋아하고 사교적이기 때문에 고독을 사랑한다는 말과는 일견 모순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내가 그 동안 옆에서 보고 느낀 바로도 유난히 고독을 ‘타는’분이 사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다재다능하고 그렇게 시와 고독을 사랑하던 한 시인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그가 생전에 누렸던 인하대학교 대학원장,문인협회이사장,한국시인협회회장 그리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라는 공적인 영예에서도 결코 가리워지지 않던 다정다감하고 고독했던 시인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그의 이미지는 우리의 가슴 속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시 속에서 길이 살아 있을 것입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종길 (예술원 회원·고려대 명예교수)
2003-03-10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불장인 국내증시에서 여러분의 투자성적은 어떤가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5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외국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여러분의 수익률은 어떤가요?
1. 수익을 봤다.
2. 손해를 봤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