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광장] ‘순간을 영원히’ 기록문화의 혁명

[젊은이 광장] ‘순간을 영원히’ 기록문화의 혁명

서주원 기자 기자
입력 2003-03-01 00:00
수정 2003-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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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방학 숙제 때문에 의무적으로 쓰던 일상의 기록들.몇 년 후 다시 읽었을 때 남는 것은 ‘맞아,그때 그랬지.’라는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사진 몇장이라도 더해지면 일기는 더 생생해진다.이미지 커뮤니케이션 시대인 요즘 디지털 카메라(디카)와 휴대전화 카메라(폰카),웹카메라(웹캠) 등 어린이 손바닥만한 문명의 이기(利器)가 온갖 삶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다.기록이 종이 밖으로 나온 셈이다.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기록 문화는 시대를 증언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수능시험을 치른 친척 동생이 촛불시위에 다녀왔다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액정에 촛불로 가득 찬 세종로의 모습이 보였다.

휴대전화에 장착된 디지털 카메라로 미 대사관 앞 전경들,주한미군 지위협정(SOFA)개정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찍은 것이다.휴대전화에 달린 작은 카메라가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을 담은 것이다.

굳이 기자나 역사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셈이다.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에서 무엇보다 현장의 급박한 모습을 생생하게전한 것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지하철 폐쇄회로(CC)TV 화면이 아니었다.사고 당시 한 학원강사가 연기가 가득한 1080호 전동차 내부를 찍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가 무심코 찍은 디지털 카메라 화면에는 숨 막혀 답답해하는 승객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안타까운 순간을 기록한 사진 한 장은 곧 인터넷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시대의 증언이라는 거창한 말을 굳이 들지 않아도 우리의 소소한 일상은 이미 영상에 사로잡혀가고 있다.예전에는 보고 느낀 것을 말이나 글로 전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영상에 담아 상대에게 보여주는 세상이다.죽음 같은 극단적 상황도 영상화될 정도다.

지난 1월 미국에서는 인터넷으로 자살을 생중계한 사건이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 사는 브랜드 베다스는 죽기 전 인터넷 사이트에 채팅방을 개설했다.

그는 벌거벗은 채 마리화나와 각종 약병을 옆에 쌓아둔 뒤 웹카메라를 켰다.1시간2분 동안 채팅방에 들어온 12명의 사람은 그가 약을 삼키면서 죽어 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는결국 14시간 뒤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사건이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죽어가는 과정도 기록화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비극적이지만 그의 자살은 문명의 이기도 충분히 기록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기록 문화는 ‘누구나’,‘어디서든지’,‘언제나’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이다.

요즘 길거리나 음식점에서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친구들과 놀다가 또는 맛있는 음식이나 예쁜 물건을 보다가 한 장씩 찍은 사진들은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순간을 영원히 느끼고 싶은 소박한 욕심일 뿐이다.지금 이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을 ‘영상 기록’으로 오래도록 남기고 싶다는 심리 때문인 것이다.

활자를 넘어선 이 같은 기록 문화가 한때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디지털 기록 문화’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서 주 원
2003-03-01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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