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새 정부 구성 & 로또 대박

[열린세상] 새 정부 구성 & 로또 대박

정달영 기자 기자
입력 2003-01-31 00:00
수정 2003-01-31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겨울이 깊다 함은 봄이 가깝다는 뜻이다.한 해의 시작 무렵을 신춘(新春)이라 부르는 까닭이기도 하다.추위는 요즘이 한창이지만 이 설 지나면 절기도 곧 입춘이다.

올해 설 귀성 길에는 ‘화제 집중’이라고 할 만한 일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노무현 정부의 인사다.보이는 데서,또는 보이지 않는 데서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을,바야흐로 인사의 계절인 것이다.국무총리 후보는 일찍 드러냈으나,대통령 주변의 보좌 자리 몇만 툭툭 불거졌을 뿐 새 정부 윤곽은 아직 백지다.‘인사는 만사’가 괜한 말이 아니다.새 정부 성패가 달렸다 함은 이 나라 명운이 달렸다는 뜻도 된다.어떤 얼굴,어떤 그림을 보여줄 것인지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인사에 대한 관심과는 전혀 다른 압도적 현상이 하나 있다.저널리즘 언어로 ‘광풍’이라고까지 표현된 ‘로또’ 다.100억 원대의 설 대박이 터진다고 해서 전 국민을 ‘인생 역전’의 꿈에 빠뜨린 복권 신드롬이 그것이다.

지난 해 이맘때 우리 대중 사회의 키 워드는 한 신용카드 회사의 광고 카피인‘여러부∼ㄴ,부∼자 되세요.’였다.올해는 814만분의1의 확률을 좇는 ‘인생 대역전’이 그 자리를 잇고 있다.부자되라는 덕담의 결말은 카드 빚에 몰린 신용 불량자 양산으로 나타났다.지금 그들 개인 파산자들까지 ‘마지막 남은 희망’을 로또 대박에 던지고 있는 모습을 본다.그들은 자신이 1년 새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4000분의1이고 벼락을 맞아 죽을 확률은 50만분의1이라는 통계적 비교치는 알려고 할 바가 없다.“터지면 대역전” 그것만이 오늘의 유일한 희망이고,삶의 가치다.슬픈 풍경이지만 실낱도 못되는,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열 배,스무 배 더 확률이 낮은 ‘허망한 희망’이 그곳에 있다.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 되기가 어떻게 얼마나 무망한지를 토론하고 소리친 대규모 국제회의가 지난 주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WSF)이다.나라만이 아니라 한 개인도 부자 되기는 꿈의 영역이다.빈익빈 부익부는 국가에나 개인에게나,국제사회에서나 우리사회에서나 다 드러나는 공통 현상이다.그 중에도 우리 사회의 빈익빈부익부는 그 격차가 나날이 커진다는 점이 심각한 문제다.얼마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 상위계층의 소득은 별로 줄지 않았으나 중하위 계층의 소득은 큰 폭으로 줄었다.”는 내용의 ‘빈곤·소득분배 리포트’를 냈다.외환위기를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빈곤율은 외환위기 전인 97년 수준도 회복이 아직 멀었음을 숫자로 알려주고 있다.

그 ‘빈익빈’의 현상이 구체적으로 표출되는 곳의 하나가 카드 빚이고 개인 파산이며,로또 대박에서 마지막 희망의 빛을 찾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그 모습이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오늘 우리 사회의 로또는 그저 지나가는 레저 행위만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다.

‘빈부격차 해소’‘기아와의 전쟁’‘고용 창출’,이 세 가지 공약을 들고 지난 연말 브라질 헌정사상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 된 화제의 사나이가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다.그가 내건 공약은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그는 지구의 반대편에서 같은 무렵 한국의 대통령이 된 노무현과여러 부분에서 닮았다.비주류,아웃사이더,마이너리티를 대표한다는 점도 비슷하다.심지어 ‘눈물’이 잦다는 공통점도 있다.그 룰라 대통령이 정부를 구성하면서 스스로 밝힌 가장 중요한 인사 기준은 ‘사회문제에 대해 가슴아파하는 감성’이었다고 한다.그는 29명의 장관 가운데 7명을 그 자신이 속했던 브라질 사회 최하위 빈민가 출신에서 발탁했다.아마존 열대우림 지대에서 16세까지 성장한 인디오 원주민 여성,리우데자네이루 슬럼가에서 쓰레기통 뒤져 먹을 것 찾던 성장기를 지닌 흑인 여성이 각각 환경 장관,사회발전 장관으로 기용된 것이 그 사례다.적어도 ‘가난의 문제를 아는 사람들’로 정부를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노무현 당선자는 그의 정부 인사 원칙에 대해 ‘뜻이 맞는 사람들이라야 함께 갈 수 있겠다.’고 말한 바 있다.최소한의 기준인 셈이다.성장 지상주의에 매몰되어 사라져간,차디찬 현실 논리만으로 동파(凍破)되어버린 인간의 얼굴을 되찾아 다시 따뜻한 피가 돌게 하는 일을 제일의 가치로 생각하는,그것이 그 ‘뜻이 맞는’ 사람들의 조건이었으면 한다.우리 사회 빈곤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나눔의 문제다.

감동 같은 것,부스러기라도 희망인 것,부드러운 위로가 되는 것…,빈익빈의 굴레를 힘겨워하는 많은 국민에게 그런 빛을 던져줄 수 있는 노무현 식 ‘놀랄만한 인사’는 불가능할까?

정 달 영

assisi61@hanmail.net
2003-01-31 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