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쓴 소설 중에 ‘나는 봉천동에 산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소설가가 된 지 이제 팔 년이 되었다.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나도 모르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혹은 그 이웃 동네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어쩌면 나는 그게 작가로서의 내 역할이거나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지도모르겠다.나는 글이라는 건 역사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글 쓰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신림동은 내가 사는 관악구 봉천동의 이웃 동네이다.내가 말하고 싶은 곳은 ‘난곡’이란 동네인데,행정구역상으로 보면 난곡은 관악구 신림7동에 속한다.난곡은 서울에 남은 최후의 달동네이기도 하다.
내가 난곡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봉천동 이야기를 할 때 그곳을 빼놓을 수 없는 동네이기 때문이었다.봉천동 주택재개발사업 때 봉천동 산동네에서 떠밀려나간 사람들의 일부가 난곡으로 옮겼다.그러니 거기엔 어쩌면 두번이나 집을 잃게 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긴하지만 그곳에 살던 아이들이 궁금해졌다.그러나 곧 그들을 잊어버렸다.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할 요량으로 여행을 떠났다.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단순한 며칠이 이어졌다.무료하던 늦은 밤에 나는 텔레비전을 틀었고,거기서난곡의 아이들을 만났다.프로그램의 제목은 ‘우리도 떠나요’였다.
지금 관악구의 가장 큰 현안이 바로 난곡이다.
살 집을 마련하지 못했어도 말이다.철거는 이미 시작되었다.철거가 진행되는 그 삭막하고 황폐해진 곳,하루종일 포클레인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아이들은 버려진 집처럼 방치되어 있었다.그곳에 사는 아이들,초등학생 20여명과중학생 4명의 보금자리였던 ‘낙골 공부방’도 이젠 이사를 가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고 말았다.신림동 산 101번지에 사는 아이들은 14년간이나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공부방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건 집을 잃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에게 큰 아픔과 고통이었을 것이다.10여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포클레인 기사들과 싸우며 아이들에게 공부와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아이들은 함께 하는 삶에 관해배우고 있었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여름과 가을 내내 ‘공부방 후원의 밤’을 위한 행사 준비를 했다.자신들의 힘으로 아이들은 결국 새로운 곳에 새 공부방을 갖게 되었다.그제서야 나는 안심했지만,가까운 이웃이었던 나는 왜 그 후원의 밤이 열린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왜 가보지 못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일었다.내 이웃 동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는 먼 여행지에서 듣고 있었다.내 동네를 아는 것,그곳의 아이들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그것은 문화를 실천하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걸 나는 이번에 새로 깨달았다.우리의 아이들은 제2의 문화를 만들어 갈,깊은 땅 속의 건강한 구근들이다.
난곡을 떠나는 아이들을 화면으로 보았을 때 나는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이 무얼까,잠시나마 생각했다.아이들에게 한 편의 시를 읽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았고,한 달에 두어번쯤이라면 글짓기 같은 걸 도와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그 아이들이 있는 공부방으로 얼른 전화를 걸고 싶었다.그러나 서울로 돌아오자마자,‘봉천동 산 1번지’가 본적인 나는 그 결심을 또잊어버리고 말았다.
조경란 소설가
신림동은 내가 사는 관악구 봉천동의 이웃 동네이다.내가 말하고 싶은 곳은 ‘난곡’이란 동네인데,행정구역상으로 보면 난곡은 관악구 신림7동에 속한다.난곡은 서울에 남은 최후의 달동네이기도 하다.
내가 난곡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봉천동 이야기를 할 때 그곳을 빼놓을 수 없는 동네이기 때문이었다.봉천동 주택재개발사업 때 봉천동 산동네에서 떠밀려나간 사람들의 일부가 난곡으로 옮겼다.그러니 거기엔 어쩌면 두번이나 집을 잃게 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긴하지만 그곳에 살던 아이들이 궁금해졌다.그러나 곧 그들을 잊어버렸다.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할 요량으로 여행을 떠났다.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단순한 며칠이 이어졌다.무료하던 늦은 밤에 나는 텔레비전을 틀었고,거기서난곡의 아이들을 만났다.프로그램의 제목은 ‘우리도 떠나요’였다.
지금 관악구의 가장 큰 현안이 바로 난곡이다.
살 집을 마련하지 못했어도 말이다.철거는 이미 시작되었다.철거가 진행되는 그 삭막하고 황폐해진 곳,하루종일 포클레인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아이들은 버려진 집처럼 방치되어 있었다.그곳에 사는 아이들,초등학생 20여명과중학생 4명의 보금자리였던 ‘낙골 공부방’도 이젠 이사를 가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고 말았다.신림동 산 101번지에 사는 아이들은 14년간이나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공부방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건 집을 잃는 것만큼이나 아이들에게 큰 아픔과 고통이었을 것이다.10여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길을 가로막고 있는 포클레인 기사들과 싸우며 아이들에게 공부와 노래와 춤을 가르쳤다.아이들은 함께 하는 삶에 관해배우고 있었다.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여름과 가을 내내 ‘공부방 후원의 밤’을 위한 행사 준비를 했다.자신들의 힘으로 아이들은 결국 새로운 곳에 새 공부방을 갖게 되었다.그제서야 나는 안심했지만,가까운 이웃이었던 나는 왜 그 후원의 밤이 열린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왜 가보지 못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일었다.내 이웃 동네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는 먼 여행지에서 듣고 있었다.내 동네를 아는 것,그곳의 아이들에 관해 관심을 갖는 것,그것은 문화를 실천하는 또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겠다는 걸 나는 이번에 새로 깨달았다.우리의 아이들은 제2의 문화를 만들어 갈,깊은 땅 속의 건강한 구근들이다.
난곡을 떠나는 아이들을 화면으로 보았을 때 나는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수 있는 일이 무얼까,잠시나마 생각했다.아이들에게 한 편의 시를 읽어줄 수도 있을 것 같았고,한 달에 두어번쯤이라면 글짓기 같은 걸 도와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그 아이들이 있는 공부방으로 얼른 전화를 걸고 싶었다.그러나 서울로 돌아오자마자,‘봉천동 산 1번지’가 본적인 나는 그 결심을 또잊어버리고 말았다.
조경란 소설가
2002-12-25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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