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눈에 띄는 모습이 있다.수학능력시험 당일에는 물론이려니와 면접시험일에까지 어머니와 함께 나타나는 예비 대학생들의 모습이다.일관성 없는 교육제도 속에서 해마다 바뀌는 기준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하지만 의존성을 키우는 교육에 큰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가정에서의 교육 방식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짜 주는 시간표에 맞추어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는 정작 자기가 그날그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서 그런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쳇바퀴 굴러가듯 계속 굴러갈 뿐이다.아이는 천천히 혼자서 생각해 볼 틈이 없이 엄마가 한발 앞서 짜 놓은 시간표에 맞추어 따라가기 바쁘다.이런 가운데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점점 더 약해지고,새로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 생각해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잃고 만다.
외부의 압력에 밀려 어떤 일을 계속하다 보면,그 일에 대한자신 내부로부터의 흥미가 사라진다.‘내가 좋아서’ 또는 ‘내가 배우고 싶어서’ 배운다는 생각이 들 때 학습의 효과도 극대화될 수 있다.자신의 흥미나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짜 놓은 계획표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는 생활을 장기간 계속하다 보면,마침내 자기가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된다.삶의 추진력이 될 수 있는 내적인 동기를 상실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아이 스스로 알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낼 수 있고,스스로 해야 할 일을 깨닫는 수도 많다.그런데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너무 앞서나간다.아이가 스스로 흥미를 갖기 전에 어른의 기준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계획표를 들이밀며 거기에 맞추기를 강요한다.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런 과정은 계속된다.
심지어 대학입학을 위해 학생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맞춤 계획을 짜 주는 대행사까지 있다고 한다.자신의 인생을 누구에게 맡기는 것인지,자신의 주인이 과연누구인지,아주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어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내 인생의 계획은 내가’ 이루어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과연 어느 정도나 될지 궁금하다.
부모가 너무 앞서나가는 것은 자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셈이다.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길이 아닐 경우가 많다.학원 때문에 자살한 초등학생이나 부모의 과중한 기대를 못이겨 부모를 살해한 학생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결국 자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쉴 틈 없이 무엇인가를 해 주려고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그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자녀에게 무엇을 시키고자 할 때,그것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자녀가 그것을 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그리고 자녀가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한 연후에 결정해야 한다.자녀의 의사와 흥미를 직접 물어 보고 대화를 하여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따르도록 하는 것은 결국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녀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녀 외부의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자녀 내부에서 나오는 마음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외부의 소리만을 들으려고 하다가 자칫 아주 중요한 자녀 내부의 소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
자녀가 마음 속에서부터 흥미를 느끼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고,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독립성을 길러 주는 것이 가정에서 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교육이다.
나은영 서강대 교수 신문방송학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짜 주는 시간표에 맞추어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는 정작 자기가 그날그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그리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서 그런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쳇바퀴 굴러가듯 계속 굴러갈 뿐이다.아이는 천천히 혼자서 생각해 볼 틈이 없이 엄마가 한발 앞서 짜 놓은 시간표에 맞추어 따라가기 바쁘다.이런 가운데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점점 더 약해지고,새로운 상황에 부딪쳤을 때 스스로 생각해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잃고 만다.
외부의 압력에 밀려 어떤 일을 계속하다 보면,그 일에 대한자신 내부로부터의 흥미가 사라진다.‘내가 좋아서’ 또는 ‘내가 배우고 싶어서’ 배운다는 생각이 들 때 학습의 효과도 극대화될 수 있다.자신의 흥미나 의지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짜 놓은 계획표에 따라 기계처럼 움직이는 생활을 장기간 계속하다 보면,마침내 자기가 정말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자기 자신도 모르게 된다.삶의 추진력이 될 수 있는 내적인 동기를 상실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아이 스스로 알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낼 수 있고,스스로 해야 할 일을 깨닫는 수도 많다.그런데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너무 앞서나간다.아이가 스스로 흥미를 갖기 전에 어른의 기준에서 미리 만들어 놓은 계획표를 들이밀며 거기에 맞추기를 강요한다.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이런 과정은 계속된다.
심지어 대학입학을 위해 학생의 현재 상태를 점검하고 원하는 대학에 가기위해 어떤 방향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맞춤 계획을 짜 주는 대행사까지 있다고 한다.자신의 인생을 누구에게 맡기는 것인지,자신의 주인이 과연누구인지,아주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어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내 인생의 계획은 내가’ 이루어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과연 어느 정도나 될지 궁금하다.
부모가 너무 앞서나가는 것은 자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셈이다.부모 입장에서는 자녀를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자녀를 위하는 길이 아닐 경우가 많다.학원 때문에 자살한 초등학생이나 부모의 과중한 기대를 못이겨 부모를 살해한 학생의 경우는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결국 자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쉴 틈 없이 무엇인가를 해 주려고 하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그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자녀에게 무엇을 시키고자 할 때,그것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자녀가 그것을 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그리고 자녀가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한 연후에 결정해야 한다.자녀의 의사와 흥미를 직접 물어 보고 대화를 하여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부모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따르도록 하는 것은 결국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자녀에게 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자녀 외부의 주변 사람들이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보다 자녀 내부에서 나오는 마음의 소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외부의 소리만을 들으려고 하다가 자칫 아주 중요한 자녀 내부의 소리를 놓쳐서는 안 된다.
자녀가 마음 속에서부터 흥미를 느끼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한다.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고,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그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독립성을 길러 주는 것이 가정에서 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교육이다.
나은영 서강대 교수 신문방송학
2002-11-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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