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검사 이명재

[씨줄날줄] 검사 이명재

황진선 기자 기자
입력 2002-11-09 00:00
수정 200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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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만난 한 원로 변호사는 ‘피의자 구타 사망 사건’ 얘기가 나오자 후배인 P국회의원의 검사 시절 일화를 소개했다.당시 P검사는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여러 곳에서 선처 부탁을 받았다.그래서 조금 봐주려니 했는데 P검사는 전혀 봐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기소해 법정 형량을 선고받게 했다.그런데 재판이 끝난 뒤 만난 피의자는 P검사에 대해 ‘훌륭한 분’이라며 극구 칭찬을 했다고 한다.

이명재 전 검찰총장은 ‘날리는’ 특수수사통이었지만 P의원이 그랬듯이 원망을 사지 않았다.1996년 여름 어느 날로 기억한다.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회사로 돌아오기 위해 전철을 탔다가 낯이 익은 서울지검 수사관을 만났다.그 수사관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특수부 검사에 대한 평을 하기에 이르렀다.그는 이름은 날렸지만 강압 수사로 말이 많았던 검사들을 줄줄이 거론하면서 검사는 수사도 잘해야 하지만 ‘소리’가 나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그러면서 이명재 당시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최고 검사로 꼽았다.이 전총장은 검사 시절 피의자와 차분하고끈질기게 대화를 나눠 설복시켰다.이전 총장이 퇴임사를 통해 “범죄에는 추상같되 비록 중죄인이라 하더라도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연민을 가져달라.”는 말은 공치사가 아니었다.

이 전 총장은 대구 출신에 경북고를 나온 전형적인 TK이면서도 비TK적이고 비정치적인 사람이었다.이 전 총장의 일선 시절만 해도 승진에는 수사력보다 행정 경험의 유무가 더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법무부 등에서 행정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곧 고위 간부들과 인간관계를 쌓는 것을 뜻한다.그러나 이 전 총장은 외곬으로 특수 수사에만 전념했다.서울고검장으로서 ‘아름다운 용퇴’를 했다가 총장으로 금의환향한 뒤에도 집무실에 전혀 짐을 들여놓지 않은 채 ‘수도승’같은 생활을 했다.점심은 구내식당에서 들고 일과 후에는 곧바로 집으로 갔다.외부의 영향과는 담을 쌓겠다는 다짐이요,마음을 비우고 있다는 뜻이었다.그러면서 신승남 전 검찰총장,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홍업·홍걸씨를 기소했다.그런 이 전 총장이 평생 몸바쳐왔고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기획 수사 사건으로,그것도 그토록 금기시했던 가혹 행위로 퇴진한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

2002-11-0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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