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이 하 수상하여 계절도 헛갈리는지 가을도 없이 바로 겨울로 들어간다.그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우리는 거듭 수능시험으로 비롯되는 이른바 입시지옥을 겪는다.왜 하필이면 자라나는 세대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가는 과정을 우린 지옥이라고 부를 만큼 끔찍하게 만든 걸까? 이름하여 대학에서 공부할 만한 수학능력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이지만 수험생들뿐 아니라 학부모,아니 우리 모두를 시험에 들게 하는 제도가 아닌가?
어떤 방식으로든 평가야 하지 않을 수 없다지만,왜 하필이면 하루 한 날 모든 것을 걸고 머리 속에 든 지식만 재는 시험을 보고,그 결과에 따라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야 할까? 정작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이야 자신의 앞날이 걸린 문제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그들을 위해 백일기도를 마다 않고 또 시험장 밖에서 엿가락이라도 붙여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들과 가슴 졸이는 우리 모두는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 이런 업에 치이는가? 예전 같으면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에 없는 귀한 자식 성공과 출세를 기대해 본다지만 요즘처럼 대학교육이 쉰 떡 취급받고 대졸 실업자가 즐비한 터에 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러는 걸까? 또 그토록 애를 쓰고 기를 써서 자식은 키우고기르면서,정작 자라나는 세대를 가꾸는 교육의 자리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교육이라면 목숨도 버리고 온갖 비리도 서슴지 않을 만큼 신주단지처럼 모셔온 우리에게 이제 교육은 한 마디로 어찌 해볼 수 없는 애물단지가 돼버린 것이다.아니,우리 모두의 원죄가 되어버렸다.그러니 교육을 가르치고,공부하는 나는 이 때가 되면,이토록 비교육적이고 반인간적인 교육풍토에 혼자서도 부끄러워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고,대체 이 안타까운 노릇을 계속해야 하나 스스로 시험에 들기도 한다.아무튼 수능시험은 끝났지만 우리에겐 정작 중요한 시험이 또 하나 남아 있다.다름 아닌 어른들의 ‘권능시험'이 그것이다.사실 온갖 어려운 시험을 거쳐 그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아야 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가 아니라 그들의 운명을 가늠하는 나라살림을 맡을 어른들이다.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야말로 바로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능력,곧 권능의 시험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의 수능시험은 삼엄할 정도로 철저히 감시하고 운영하면서,우리 모두의 앞날을 결정하는 어른들의 권능시험은 어리석을 만큼 방만하고 서툴게 운영한다.
물론 아쉬운 대로 민주화도 되고,매스컴도 법석을 떤 덕에 지난 총리 청문회 때처럼 까다롭다 못해 까탈스러운 시험도 보고 여론의 매운 맛도 보이기는 한다.하지만 그게 어디 존재조차 흔들리는 아이들 수능시험에 댈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 시험을 감시하고 운영하는 우리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그렇다.여전히 선거 때만 되면 도지는 깊은 병인 연고주의에 휘둘리고,풍문에 흔들려 구태의연한 패거리 짓기와 ‘왕따' 만들기에 정신없는 권능 수험생들의 농간에 놀아난다.그러니 수능시험 같은 처절한 시험에 들게 되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른들은 ‘바담 풍'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아이들의 수능시험은 좀 더 사람답게,그리고 교육답게 바꿔주고 정작 중요한 권능시험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치르도록 해야 한다.정말 사람생각하고 사람 대접하며 나라 살림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우리 모두의 심부름꾼으로 저 낮은 곳에서 삶터 구석구석을 손발이 닳도록 보살피고 어디 뒤처지거나 힘든 사람들은 없나 돌볼 준비는 되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이를테면 권능 수험생들이 어제 치른 수능시험으로 인한 아이들의 하늘을 찌르는 고통을 제대로 알고,아파하며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태도가 되어있는지 꼼꼼히 짚어보아야 한다.
내 자식만 끼고 돌며 온갖 편법과 비리로 그야말로 사람을 누르고 부리는 권세가 아니라,사람을 섬기고 살리는 힘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권능시험을 보아야 한다.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삶의 어려운 시험을 보여 시험에 들게 하는 일에 익숙한 그들에게 가장 엄격하고,까다로운 시험을 보여 진정한 살림꾼을 가려 뽑아야 한다.
정유성 서강대교수 교육학
어떤 방식으로든 평가야 하지 않을 수 없다지만,왜 하필이면 하루 한 날 모든 것을 걸고 머리 속에 든 지식만 재는 시험을 보고,그 결과에 따라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워야 할까? 정작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이야 자신의 앞날이 걸린 문제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그들을 위해 백일기도를 마다 않고 또 시험장 밖에서 엿가락이라도 붙여놓고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들과 가슴 졸이는 우리 모두는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 이런 업에 치이는가? 예전 같으면 그렇게 해서라도 세상에 없는 귀한 자식 성공과 출세를 기대해 본다지만 요즘처럼 대학교육이 쉰 떡 취급받고 대졸 실업자가 즐비한 터에 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이러는 걸까? 또 그토록 애를 쓰고 기를 써서 자식은 키우고기르면서,정작 자라나는 세대를 가꾸는 교육의 자리는 왜 이 모양 이 꼴인가?
교육이라면 목숨도 버리고 온갖 비리도 서슴지 않을 만큼 신주단지처럼 모셔온 우리에게 이제 교육은 한 마디로 어찌 해볼 수 없는 애물단지가 돼버린 것이다.아니,우리 모두의 원죄가 되어버렸다.그러니 교육을 가르치고,공부하는 나는 이 때가 되면,이토록 비교육적이고 반인간적인 교육풍토에 혼자서도 부끄러워 어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고,대체 이 안타까운 노릇을 계속해야 하나 스스로 시험에 들기도 한다.아무튼 수능시험은 끝났지만 우리에겐 정작 중요한 시험이 또 하나 남아 있다.다름 아닌 어른들의 ‘권능시험'이 그것이다.사실 온갖 어려운 시험을 거쳐 그 능력을 제대로 검증받아야 하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가 아니라 그들의 운명을 가늠하는 나라살림을 맡을 어른들이다.얼마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야말로 바로그 권력을 제대로 행사할 능력,곧 권능의 시험이 아닐 수 없다.하지만 우리는 아이들의 수능시험은 삼엄할 정도로 철저히 감시하고 운영하면서,우리 모두의 앞날을 결정하는 어른들의 권능시험은 어리석을 만큼 방만하고 서툴게 운영한다.
물론 아쉬운 대로 민주화도 되고,매스컴도 법석을 떤 덕에 지난 총리 청문회 때처럼 까다롭다 못해 까탈스러운 시험도 보고 여론의 매운 맛도 보이기는 한다.하지만 그게 어디 존재조차 흔들리는 아이들 수능시험에 댈 것인가? 무엇보다도 그 시험을 감시하고 운영하는 우리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그렇다.여전히 선거 때만 되면 도지는 깊은 병인 연고주의에 휘둘리고,풍문에 흔들려 구태의연한 패거리 짓기와 ‘왕따' 만들기에 정신없는 권능 수험생들의 농간에 놀아난다.그러니 수능시험 같은 처절한 시험에 들게 되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른들은 ‘바담 풍'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아이들의 수능시험은 좀 더 사람답게,그리고 교육답게 바꿔주고 정작 중요한 권능시험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치르도록 해야 한다.정말 사람생각하고 사람 대접하며 나라 살림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우리 모두의 심부름꾼으로 저 낮은 곳에서 삶터 구석구석을 손발이 닳도록 보살피고 어디 뒤처지거나 힘든 사람들은 없나 돌볼 준비는 되어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이를테면 권능 수험생들이 어제 치른 수능시험으로 인한 아이들의 하늘을 찌르는 고통을 제대로 알고,아파하며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태도가 되어있는지 꼼꼼히 짚어보아야 한다.
내 자식만 끼고 돌며 온갖 편법과 비리로 그야말로 사람을 누르고 부리는 권세가 아니라,사람을 섬기고 살리는 힘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권능시험을 보아야 한다.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삶의 어려운 시험을 보여 시험에 들게 하는 일에 익숙한 그들에게 가장 엄격하고,까다로운 시험을 보여 진정한 살림꾼을 가려 뽑아야 한다.
정유성 서강대교수 교육학
2002-11-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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