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만큼 성숙해진다는 오래된 유행가 가사처럼,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은 인간을 변하게 만들기 마련이다.하지만 그 가슴이 턱 막히는 고통 없이도 인간이 성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흑인배우 할리 베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몬스터 볼’(Monster’s Ball·18일 개봉)은 끝없는 절망의 깊은 우물을 휘젓고 다니는 영화다.
인생이 마냥 즐겁기만 한 사람이라면 발길을 돌려라.하지만 기억하기조차 싫은 슬픔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사는 사람에게는,생채기를 끄집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영화다.
사형수인 남편 로렌스(퍼프 대디)를 11년째 면회해 온 레티샤(할리 베리).이젠 지쳤다며 쌀쌀맞게 남편을 대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불안하게 담배를 피우며 다리를 떠는 레티샤의 모습은 초조하기만 하다.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남편.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대를 이어 사형집행관이 된 행크(빌리 밥 손튼).흑인을 경멸하고 아들을 나약하다고 구박하는 전형적인 남부 출신 사내다.하지만 로렌스의 사형집행날 구토를 한 아들을 나무라다가,눈 앞에서 아들이 자살하자 그의 삶은 바뀐다.
어찌 보면 신파인데다,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한 스토리 전개는 느슨하다.레티샤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날 하필이면 그 자리를 지나간 사람은 행크였고,그 행크는 하필이면 레티샤 남편의 사형집행관이라니.게다가 둘 다 아들을 잃은 슬픔까지 공유하니 기막힌 우연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그 우연을 운명으로 뒤바꿀 만한 힘을 가졌다.둘의 만남은 우연일지 모르지만,둘을 연결하는 감정의 소통은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렬하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달라고 애원하는 레티샤와,같은 무게의 슬픔을 안고 사는 행크가 벌이는 거칠고도 슬픈 섹스는,양념처럼 가미되는 보통의 섹스 신과 차원이 다르다.둘의 섹스는 모든 가식을 집어던진 가장 정직한 소통이자 갈망이요 위로다.
이후 레티샤와 행크가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은 로맨틱 영화처럼 알콩달콩하게 그렸다.영화적 재미를 고려한 셈.하지만 그보다는 흑인을 경멸하다 흑인여자와 몸을 섞고 사랑을 느끼는 행크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비싼 대가를 치른 뒤에야 얻게 된 진실.결코 깨질 것 같지 않은 독단과 편견의 껍질에 갇혀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에 관해 성찰하게 한다.저런 아픔을 겪지 않고도 성숙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아쉽게도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그 쉽지 않은 변화를 표현해 낸 빌리 밥 손튼의 연기가 완벽에 가깝다.
아들에 관한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웃다 울다 섹스로까지 이어지는 장면에서 할리 베리의 연기도 숨이 막힐 정도로 실감난다.이 둘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을 영화.
‘몬스터 볼’은,영국에서 사형 집행 전날 밤에 사형수에게 열어주는 파티를 뜻한다.선댄스영화제 출신의 서른한살 젊은 감독 마크 포스터가 연출을 맡았다.
김소연기자 purple@
흑인배우 할리 베리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몬스터 볼’(Monster’s Ball·18일 개봉)은 끝없는 절망의 깊은 우물을 휘젓고 다니는 영화다.
인생이 마냥 즐겁기만 한 사람이라면 발길을 돌려라.하지만 기억하기조차 싫은 슬픔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사는 사람에게는,생채기를 끄집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영화다.
사형수인 남편 로렌스(퍼프 대디)를 11년째 면회해 온 레티샤(할리 베리).이젠 지쳤다며 쌀쌀맞게 남편을 대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불안하게 담배를 피우며 다리를 떠는 레티샤의 모습은 초조하기만 하다.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남편.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대를 이어 사형집행관이 된 행크(빌리 밥 손튼).흑인을 경멸하고 아들을 나약하다고 구박하는 전형적인 남부 출신 사내다.하지만 로렌스의 사형집행날 구토를 한 아들을 나무라다가,눈 앞에서 아들이 자살하자 그의 삶은 바뀐다.
어찌 보면 신파인데다,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한 스토리 전개는 느슨하다.레티샤의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한 날 하필이면 그 자리를 지나간 사람은 행크였고,그 행크는 하필이면 레티샤 남편의 사형집행관이라니.게다가 둘 다 아들을 잃은 슬픔까지 공유하니 기막힌 우연의 연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그 우연을 운명으로 뒤바꿀 만한 힘을 가졌다.둘의 만남은 우연일지 모르지만,둘을 연결하는 감정의 소통은 그 어떤 영화보다 강렬하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달라고 애원하는 레티샤와,같은 무게의 슬픔을 안고 사는 행크가 벌이는 거칠고도 슬픈 섹스는,양념처럼 가미되는 보통의 섹스 신과 차원이 다르다.둘의 섹스는 모든 가식을 집어던진 가장 정직한 소통이자 갈망이요 위로다.
이후 레티샤와 행크가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은 로맨틱 영화처럼 알콩달콩하게 그렸다.영화적 재미를 고려한 셈.하지만 그보다는 흑인을 경멸하다 흑인여자와 몸을 섞고 사랑을 느끼는 행크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 더 흥미롭다.
비싼 대가를 치른 뒤에야 얻게 된 진실.결코 깨질 것 같지 않은 독단과 편견의 껍질에 갇혀 살아가는 인간이란 존재에 관해 성찰하게 한다.저런 아픔을 겪지 않고도 성숙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아쉽게도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그 쉽지 않은 변화를 표현해 낸 빌리 밥 손튼의 연기가 완벽에 가깝다.
아들에 관한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웃다 울다 섹스로까지 이어지는 장면에서 할리 베리의 연기도 숨이 막힐 정도로 실감난다.이 둘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돈이 아깝지 않을 영화.
‘몬스터 볼’은,영국에서 사형 집행 전날 밤에 사형수에게 열어주는 파티를 뜻한다.선댄스영화제 출신의 서른한살 젊은 감독 마크 포스터가 연출을 맡았다.
김소연기자 purple@
2002-10-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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