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위한 동화 기대이하”문학평론가 엄경희씨 비판

“어른 위한 동화 기대이하”문학평론가 엄경희씨 비판

심재억 기자 기자
입력 2002-09-27 00:00
수정 2002-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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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시의 산문화와 더불어 출판붐을 이룬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지나치게 교조적일 뿐 아니라 작품의 질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혹독한 비판이 제기됐다. 문학평론가 엄경희씨는 최근 출간된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가을호에 기고한 비평 ‘상상력을 억압하는 교조적 목소리’를 통해 정호승·안도현 시인이 잇따라 낸 ‘어른 동화’가 지나치게 교조적이어서 동화의 참된 묘미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 제기는 ‘어른 동화’가 철학 등 전문적 담론과 달리,유명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과 취향·인생관 등을 감성·정서적으로 기술한 기존 수필문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산문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가 내려진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엄씨는 “정호승과 안도현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워 여러 편의 동화를 출간한 대표적 시인들”이나 “이들이 지나치게 교조적 교사 역할을 감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미적 가치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먼저 정호승의‘연인’(열림원·98년 간)을 문제삼았다.풍경에 달려있는 물고기가 비어(飛魚)가 돼 세상을 여행하면서 사랑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이 동화의 근본구조는 참신하고 시적이나,지나치게 반복적으로 사랑과 삶의 의미를 설교함으로써 독자 수준을 무시하고,동화의 참맛을 삭감시킨다고 주장하고 19가지 예문을 함께 제시했다.

사랑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하듯 강한 노파심을 드러냈으며 문구들 통속하고 식상한 것이 대부분이어서 진부하다고 평했다.

작품에 내재된 리얼리티 문제도 꼬집었다.한송이 민들레가 차에 치일까 봐 다솜이가 목숨을 내던진다는 식의 설정은 “동화가 꿈과 환상을 제공해 줄수 있는 양식이라는 점을 전폭적으로 의식하더라도 리얼리티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작중 인물들의 대화가 특정한 주제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차단할 가능성을 가졌다든가,허술한 구성,주인공의 모순된 성격 등도 문제라고 적시했다.

안도현의 ‘연어’(문학동네,96년 간)와 ‘증기기관차 미카’(문학동네,2001년 간)도 ‘부정의식을 촉구하는 계몽적 교사’라고 비판했다.

“연어라는 말속에는 강물 냄새가 난다.”는 등 ‘연어’가 안씨 특유의 서정적 문체로 쓰였으나,인간에 대한 지나친 부정의식을 드러내는가 하면 이와 관련한 반전조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고 밝혔다.

엄씨는 “인간에 대한 부정적 의식이 안씨의 동화에 일관되게 나타나지만 이같은 계몽적 목소리는 동화의 묘미를 떨어뜨릴 뿐 아니라,그것이 교조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거부반응을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정호승의 경우처럼 일부 문장이 진부하고 통속적이라는 점도 문제삼았다.

‘연어’중 “내가 지금 여기서 너를 감싸고 있는 것,나는 여기 있음으로 해서 너의 배경이 되는거야.”를 들어 엄씨는 “유행가 가사에나 나올 법한 얘기”라며 “이런 표현이 그의 동화를 읽히는 요인이 아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증기기관차 미카’에서 사건으로 구체화되지 않은 ‘말하기’에 대해 그는 “작품 중에서 사건화하지 않은 것들을 거듭 강조할 때 그가 주장하는 당위는 독자의 상상력을 억압하는 역효과를 낳을 가능성을 갖는다.”면서 이를 ‘허약한 산문성’이라고 꼬집었다.

‘빠름은 곧 자연에 대한 수탈이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는 등 단순하고 지나친 논리 비약,인간을 자연과 대립하는 관계로 도식화한 점 등이 작가의 ‘인간에 대한 혐오감’과 겹쳐지면서 배태할 ‘잘못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대중의 호응과 작품의 질이 언제나 비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는 엄씨는 “이들의 글에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교조적인 목소리는 독자를 가르치고 개도하려는 의도를 더 부각시킨다.”면서 “독자의 상상력에 간섭하거나 가르치는 동화가 아니라 어른의 삶에서 잃어버린 상상력을 되찾아 주는 동화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출간과 관련한 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작품의 질적 수준이 우선해야 한다.”며 “작품의 질은 차선이 되고 전략만 앞선다면 이는 상업주의에 영합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2002-09-2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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