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길섶에서] 실력저지

[2002 길섶에서] 실력저지

염주영 기자 기자
입력 2002-09-14 00:00
수정 2002-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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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후 서울 홍릉의 한국개발연구원(KDI) 대회의실.‘정부산하기관 관리기본법 제정안’에 관한 공청회 개최가 예정보다 지연되고 있었다.흥분한 산하기관 노조원들이 방청석에 대거 진을 치고 고함을 질러댔다.법안을 작성한 기획예산처를 ‘노동자의 적’으로 규정하는 피켓들도 즐비했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 공청회가 가까스로 열렸다.개회 직후 한 방청객이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느닷없이 ‘수화자’(手話者)가 있는지를 물었다.장애인이 있는데 수화해줄 사람이 없다면 공청회는 무효라고 우겼다.다른 방청객은 토론자석에 다가와 다짜고짜 법안에 대해 반대하느냐고 묻기도 했다.토론자들을 싸잡아 정부의 들러리라고 매도하는 소리도 들렸다.노조원들은 잘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한 시간 가량 시위를 벌인 뒤 “공청회는 무효”라고 외치며 일사불란하게 퇴장했다.

토론자석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토론자료를 주워 담았다.돌아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실력저지는 국회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염주영 논설위원

2002-09-1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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