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종이없는 국감

[씨줄날줄] 종이없는 국감

최태환 기자 기자
입력 2002-08-31 00:00
수정 2002-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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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들은 주위사람들이 근황을 물으면 이따금 “국회에 나가 시달리는 것만 빼면 할 만하다.”고 말한다.장·차관 등 정무직일수록 더 실감나게 말한다.이들은 “국회에선 그저 고개숙이고,의원님들 비위 건드리지 않고,적당하게 넘기는 게 최고”라고 말한다.지난 정권 때 어느 총리는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계속 귀에 손을 대며 “잘 안들린다.”고 김을 뺐고,그래도 안되면 “자세히 알아 본뒤 다시 보고 드리겠다.”며 위기를 넘겼다.

국민의 정부 마지막 국정감사가 곧 시작된다.벌써부터 공무원들은 한숨이다.대선을 앞두고 열리는 국감인 만큼 죽음의 통과의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들이다.“정치인들의 세치의 혀 대결에 죽어나는 것은 공무원”이라는 푸념도 들린다.국회가 열릴 때면 아예 국회로 출근하는 한 고위 공무원은 “온갖 루머와 공격이 넘실댈 텐데 어떻게 넘길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하지만 국감자료 준비에 눈코 뜰 새 없는 공무원들에겐 이같은 푸념도 사치다.본래 업무는 뒷전에 두고 자료 준비에 매달린 지오래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피감기관들이 국회의원 요구자료를 인쇄하는 데 든 비용만 40억원이 넘었다고 한다.자료 요구건수도 7만건 가까이 됐다.인쇄비용도 비용이지만 의원별 요구자료를 분류해 전달하는 것도 만만찮은 작업이다.임시국회 때 자료 등을 합하면 부처별로 해마다 몇 트럭 분량의 인쇄물이 해당 상임위원회에 전달된다.엄청난 비용과 시간 낭비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가 이번 국감 때 자료를 e메일로 받는 ‘종이없는 국감'을 추진하겠다고 한다.위원회 관계자는 “의원 요구자료는 물론 국감장의 업무보고 자료도 플로피 디스켓이나 CD롬으로 전환토록 할 예정”이라고 했다.일부 지방청 감사는 화상감사도 추진하겠다고 한다.그동안도 일부 국회의원들이 필요한 자료를 e메일로 받는 경우는 있었지만,상임위 차원에서 종이없는 국감이 추진되기는 처음이다.전체 상임위로 확대되고,정기국회나 임시국회에서도 활용되길 기대한다.종이없는 국감은 지방의회도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차제에 국회 때면 자료준비와 답변준비에매달리고,주요 공무원들이 모두 국회에 몰려 있어 행정이 마비되다시피 하는 낭비도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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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환 논설위원 yunjae@
2002-08-3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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