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륭 새 소설집 ‘잠의 열매를‘ “난해하고 심오 읽을수록 전율”

박상륭 새 소설집 ‘잠의 열매를‘ “난해하고 심오 읽을수록 전율”

입력 2002-08-09 00:00
수정 2002-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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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와 ‘칠조어론’으로 한국문단에 굵직한 뿌리하나를 박아놓은 작가 박상륭.그가 소설집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꾼다’(문학동네)를 최근 펴냈다.그의 작품은 여전히 난해하고 심오하다.

‘두 집 사이’연작소설 네 편과 ‘混紡(혼방)된 상상력의 한 형태’연작소설 네 편,그리고 ‘영합(迎合)이냐,순제(殉祭)냐’‘순제(殉祭)냐,순난(殉難)이냐’등 열편의 작품을 수록한 이 소설집도 만만찮은 무게로 다가온다.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려면 확실히 ‘상당한 견딤’이 필요하다.

예컨대 독자는 ‘그 세모꼴의 방에서 늙은네는…’이라든가 ‘-패관(稗官)이란,하필이면 화천(火天,Agni)니미 씨나락 까먹은…’등등 보통 1000자에,좀 싱겁다 싶으면 예사로 1500자를 넘기는 끝모를 문단(文段)과도 마주치는 특이한 체험을 준비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희열의 메시지’라는 것도 사실은 ‘문학에서 얻는 소득’일 뿐이겠다.그럼에도 그가 갑충처럼 딱딱하게 퇴화해 버린 종교와 신화,몽상 등속의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 우리에게 들춰보이는 ‘궁극의 자아’는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고 신선하다.

박상륭 문학의 일관된 화두인 삶과 죽음의 문제가 이번 작품집에도 고스란히 용해돼 있다.종교의 어지러운 사유체계,이를테면 선불교의 견성과 돈오,기독교의 희생과 구원,제금술과 집단무의식에서 주역의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현란한 사유의 향연이 펼쳐진다.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의,어지럽게 헝클어진 회로같은 소통의 통로,혹은 하얗게 눌러붙은 수많은 사유의 땜질 자국이 즐비하게 꼬리를 문다.한가닥만 헝클어져도 순식간에 기능이 정지되고 마는,마치 아주 복잡한 미로찾기 퍼즐 같은 그의 작품은 읽는이에게 예외없이 ‘요의(尿意)같은 전율’을 안겨준다.전율은 작중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도입부 다섯쪽과 마치기전 다섯쪽 무렵이 절정이다.

오죽했으면 그의 소설집에 붙인 작품해설에서 문학평론가 김명신조차 “그의 소설은 뚫고 지나가야 할 하나의 두꺼운 벽이고 터널이자 미로이다.그 숨막힐 듯한 고통을 견뎌내고,긴 터널을 더듬거리며 통과했을때 은총처럼 맛보게 되는 경악과 탄성…” 이라고 적었을까.

그러나 미리 겁먹을 일은 아니다.아예 처음부터 구도(求道)를 위한 고행이라고 생각하고 읽다 보면 혼란스러운 가운데 기대보다 큰 감동을 만날 수도 있다.쉽게 읽고 쉽게 잊기보다,힘겹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뒤가 묵직하게 뿌듯한 뭔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박상륭 문학이 주는 또다른 맛이다.

심재억기자
2002-08-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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