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광장] 잊혀진 히딩크 리더십

[젊은이 광장] 잊혀진 히딩크 리더십

정효정 기자 기자
입력 2002-07-27 00:00
수정 2002-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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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대형서점에 들렀다.한국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지낸 거스 히딩크를 소재로 한 책들이 눈길을 끌었다.대부분 월드컵 4강 신화의 키워드를 히딩크식 리더십에서 찾는 분석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책에서뿐만 아니라 월드컵 이후 각계 전문가들은 연고주의를 극복하고 능력위주로 선수를 뽑은 히딩크의 리더십을 본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학연과 지연·혈연을 내세운 ‘줄대기’가 여전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장·차관들 가운데 특정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이 얼마나 될까.또 동문이나 고향 선후배 간에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인터넷에 동문회 사이트나 가까운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고(緣故) 사이트가 넘쳐나는 것도 결코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자기 능력이나 성실성 하나로는 뭔가 부족할 것 같고,그래서 학연·지연·혈연 등 ‘연고’에 기대고 의지하려는 생각에 우리 자신이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안타까운 일은 21세기 우리 사회를 짊어질 대학가의 젊은이들도 동문 선후배를 챙기는 것에서부터 사회의 처세술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한 친구는“작은 연줄만 찾아도 뭔가 뿌듯한 안정감을 은연중에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이같은 풍토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히딩크의 출현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고 할 만하다.

사실 히딩크 이전의 대표팀 선수들은 일단 선발되면 ‘붙박이’처럼 눌러앉는 일이 많았다.누구도 ‘그들’의 기득권에 ‘도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히딩크는 과감했다.능력과 성실성이 대표팀 선발의 절대적인 기준이었고,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신뢰감을 형성했다.그 결과가 월드컵 4강이었다.

월드컵 4강이 단지 운이 아니라 실력 때문이었다는 국내외의 평가가 단순한‘립서비스’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지 한달.히딩크가 남긴 교훈이 과연 우리 사회의 밝은 꿈을 실현시키는 자양분으로 쓰여질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감이 든다.

7월 들어 히딩크의 고향을 둘러보는 여행상품이 쏟아지고,그를 본뜬 캐릭터 인형이나 그의 얼굴을 그린 티셔츠가 날개돋친 듯 팔리는 등 히딩크 열풍이 상업적인 방향으로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히딩크의 리더십은 경제논리에 묻혀 조금씩 잊혀져가는 것은 아닐까.

사실 월드컵의 열풍 이후에도 정치권이 줄세우기와 제몫 챙기기,당리당략을 위한 정쟁으로 국민의 불신을 사기는 마찬가지다.

사회에는 여전히 권위주의와 일류대병,특정지역 편중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크고 작은 사회 쟁점을 둘러싸고 일희일비하거나 ‘냄비처럼’ 들끓는 근성도 예전이나 마찬가지다.

객관성과 투명성을 기준으로 인재를 등용하고,꾸준히 목표를 향해 체계적인 전략을 수립·실천한 히딩크식 리더십을 차분히 곱씹어 보는 우리의 자세가 아쉽다.정말 우리 사회가 히딩크로부터 문제해결의 지혜를 배웠는지,또 배울 수 있는지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정효정(한국외대 학보사 편집장)
2002-07-2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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