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피의 문화사 -피할 수 없었던 피의 인류문화사

책/ 피의 문화사 -피할 수 없었던 피의 인류문화사

입력 2002-07-26 00:00
수정 2002-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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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인류의 역사와 문화 속에서 결코 소진되거나 변질되는 법 없이 장구한 맥락으로 흐르는 가장 영원하고 장엄한 의식의 향료 혹은 근원.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이렇게 말한다.“피 한방울로 서명을 해주시오.…피는 아주 특별한 액체니까요.”

인간은 태초부터 이 피의 영향권에 갇혀 살았다.스스로 몸안에 가두고 있으면서도 피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 조절하거나 강제하지 못했다.피가 죽으면 생명체도 죽었고,피가 불편하면 어김없이 병고를 겪어야 했다.그런가 하면 문명은 피의 지배,피의 논리를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다.종교가 그렇고,신화가 그렇고,과학이 그랬다.

우리에게도 피가 특별하기는 마찬가지였다.피를 단순하게 생체의 일부라고 보는 시각은 지극히 단순하고 무지한 이해다.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그 참혹함을 시산혈해(屍山血海)라며 전율했는가 하면 결연한 각오는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말로 표현했다. 종교적 제의에 나타나는 포도주는 신성의 상징이었으며 가장 근친한 가족은 혈육이라고 불렸다.인간은 예로부터 이 붉은체액의 도그마에 갇혀 살았다.생사를 가르는 생명의 근원인가 하면 신성한영약이기도 했으며 가장 원초적인 터부의 대상이기도 했던 까닭이다.

이런 피가 종교와 신화,전쟁,의학,동화,소설,영화,예술 등 인류 역사에 스며 있는 흔적을 추적한 구드룬 슈리의 책 ‘피의 문화사(Lebensflut)’(장혜경 옮김)가 이마고에서 출간됐다.1만 2000원.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돼 온 방혈에서부터 예수의 피 대신 사용된 포도주,동화 백설공주에 묘사된 세 방울의 피,마피아와 야쿠자의 피로 나누는 결연,사디즘과 뱀파이어,피를 통해 표현하는 행위예술에 이르기까지 피에 관한 모든 것이 망라돼 있다.

저자는 책에서 피를 다면체적 현상 혹은 모두가 공유하는 객체로 인식하고 이를 정밀하게 분석해 보인다.예컨대 신화의 시대를 거쳐오면서 유력한 카타르시스의 수단이라고 믿었던 피가 여성의 생리혈일 때는 원죄의 상징으로 둔갑했으며,합스부르크 왕가의 아랫입술 모양새나 프랑스 왕가의 혈우병은 근친상간을 경고하는 피의 목소리라고 이해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지금도 혈액형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터무니없는 ‘피의 속설’이 심지어는 가장 과학적이라는 의학계에까지 널리 퍼져 있는가 하면 한때 결핵에 따른 객혈은 문학가의 마패처럼 통용되기도 했다.

전쟁과 피의 상관성도 재미있다.인류는 서기전 카르타고 전쟁때부터 가장최근의 체첸전쟁에 이르기까지 900만명의 목숨을 전쟁의 제단에 바쳤으며 이들이 흘린 피는 1인당 평균 1.5ℓ씩 모두 125만ℓ나 됐다는 통계를 제시하기도 한다.

심재억기자 jeshim@
2002-07-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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