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는 코란,다른 손에는 칼’이라는 구호로 흔히 알려진 이슬람교는 확실히 호전적인 인상을 준다.게다가 이 구호는 이교도에 대한 가차없는 단죄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담은 듯이 보이는 것은 물론 신도들에게도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것같아 대단히 위압적이다.하지만 이는 서양 기독교 사회의 왜곡이라는 것이 이슬람교의 주장이다.
이처럼 ‘우리가 잘못 아는 이슬람교와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를 가장 공정하게 기술한 것으로 평가받는 게오르규의 저서 ‘마호메트 평전’(민희식·고영희 옮김·초당)이 번역 출간됐다.
마호메트는 현재 20억명에 이르는 신도를 가진 거대 종교의 창시자로 아랍사회를 종교적으로 통일한 인물이다.따라서 인류역사에 정치·종교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남겼는데도 아랍권을 벗어나서는 너무나 저급하고 왜곡된 평가를 받고 있다.이는 지난 수세기 동안 서양 및 그 영향권에 제공된 그에 관한 정보가 대부분 기독교적 인식으로 해석돼 전파됐기 때문.
이런 점에서 소설 ‘25시’로 잘 알려진 루마니아의 망명작가 게오르규의 마호메트 평전은 뒤틀리고 덧칠된 마호메트의 진면목은 물론 이슬람교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공산주의를 온 몸으로 체험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정교회의 신부이기도 한 게오르규 자신이 “공산주의 붕괴 이후 역사의 대립각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서양 사회와 이슬람교의 아랍권간에 형성될 것”이라고 밝힌 저술 배경에서 이 책에 쏟은 그의 진지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게오르규의 예단은 ‘9·11테러’를 겪으면서 ‘가상상황에 익숙한 한 소설가의 섣부른 식견’이 아님이 입증돼 뒤늦게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그는 이 책에서 마호메트를 전인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위인으로 되살려 낸다.
이전에도 뷔스텐벨트나 네르데케 등의 연구활동을 통해 마호메트에게 덧씌운 오욕의 그림자가 다소나마 벗겨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특별한 사심이나 악의가 없다.’는 점 때문에 게오르규의 책은 가장 공정한 마호메트 평전으로 이해되는 분위기다.
물론 게오르규가 이슬람교와 전혀 무관한 사람은 아니다.이슬람교를 신봉한 오스만투르크제국에 오래 지배를 받은 루마니아의 몰다비아에서 태어난 그로서는 ‘당시의 잔학한 역사’에 감성의 끈을 잇대고 있는 것.
책에는 마호메트의 생애가 주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기술돼 있어 통론적 이해가 가능하도록 했다.뿐만 아니라 마호메트의 생애를 종교지도자로서는 물론 정치·외교가라는 인간적 관점에서도 추적해 그와 이슬람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도록 한다.
게오르규가 나치즘과 볼셰비즘이 낳은 잔인하고 참담한 서양 기독교 문명의 한 단면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으리라는 추측이 결코 무리는 아닐것이다.‘메시아의 구원으로부터 멀어지는 서양 사회는 지금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심재억기자 jeshim@
이처럼 ‘우리가 잘못 아는 이슬람교와 이슬람교 창시자 마호메트’를 가장 공정하게 기술한 것으로 평가받는 게오르규의 저서 ‘마호메트 평전’(민희식·고영희 옮김·초당)이 번역 출간됐다.
마호메트는 현재 20억명에 이르는 신도를 가진 거대 종교의 창시자로 아랍사회를 종교적으로 통일한 인물이다.따라서 인류역사에 정치·종교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남겼는데도 아랍권을 벗어나서는 너무나 저급하고 왜곡된 평가를 받고 있다.이는 지난 수세기 동안 서양 및 그 영향권에 제공된 그에 관한 정보가 대부분 기독교적 인식으로 해석돼 전파됐기 때문.
이런 점에서 소설 ‘25시’로 잘 알려진 루마니아의 망명작가 게오르규의 마호메트 평전은 뒤틀리고 덧칠된 마호메트의 진면목은 물론 이슬람교의 실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데 좋은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공산주의를 온 몸으로 체험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정교회의 신부이기도 한 게오르규 자신이 “공산주의 붕괴 이후 역사의 대립각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서양 사회와 이슬람교의 아랍권간에 형성될 것”이라고 밝힌 저술 배경에서 이 책에 쏟은 그의 진지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게오르규의 예단은 ‘9·11테러’를 겪으면서 ‘가상상황에 익숙한 한 소설가의 섣부른 식견’이 아님이 입증돼 뒤늦게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그는 이 책에서 마호메트를 전인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위인으로 되살려 낸다.
이전에도 뷔스텐벨트나 네르데케 등의 연구활동을 통해 마호메트에게 덧씌운 오욕의 그림자가 다소나마 벗겨진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특별한 사심이나 악의가 없다.’는 점 때문에 게오르규의 책은 가장 공정한 마호메트 평전으로 이해되는 분위기다.
물론 게오르규가 이슬람교와 전혀 무관한 사람은 아니다.이슬람교를 신봉한 오스만투르크제국에 오래 지배를 받은 루마니아의 몰다비아에서 태어난 그로서는 ‘당시의 잔학한 역사’에 감성의 끈을 잇대고 있는 것.
책에는 마호메트의 생애가 주제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기술돼 있어 통론적 이해가 가능하도록 했다.뿐만 아니라 마호메트의 생애를 종교지도자로서는 물론 정치·외교가라는 인간적 관점에서도 추적해 그와 이슬람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도록 한다.
게오르규가 나치즘과 볼셰비즘이 낳은 잔인하고 참담한 서양 기독교 문명의 한 단면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졌으리라는 추측이 결코 무리는 아닐것이다.‘메시아의 구원으로부터 멀어지는 서양 사회는 지금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심재억기자 jeshim@
2002-06-2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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