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너무 서두르지 말라”

“통일 너무 서두르지 말라”

입력 2002-05-30 00:00
수정 2002-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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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나치즘의 광기를 비판한 소설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독일의 대표적인 참여지식인 귄터 그라스가 한국을 찾아 29일 ‘통일은 지속적으로 풀어가야할 과제’라는 주제로 중앙대에서 강연을 했다. 그라스는 이 강연에서 “설사 통일의 길이 열리더라도 독일처럼 단숨에 이를 성사시키는 것보다는 두 국가 연합체제(연방제)라는 과도기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수준이 다르고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지만 문화적 실체만은 결코 분단되지 않는 만큼 작가를 비롯한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장소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북한측 인사와 대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귄터 그라스 獨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내가 지난 95년 펴낸 소설 ‘광야’는 엄청난 비판과 분노를 몰고 왔다.이유는 간단했다.내가 통일로 혼돈을 겪는 동독인의 시각에서 이 소설을 썼기 때문이었다.나는 이소설에서 40년간 일당독재를 겪은 동독인들이지만 그들이역사의 실패자라거나,서독에 진 패자로서가 아니라 당당한 통일의 주체로 대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동독인들은 당당한 주체로 대접받지 못했다.그들이 민주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그럼에도 서독인들은,모든 것을 자신들이 더 잘 알고 또 우월하다는 듯이 굴었다.이런 태도는 헌법 제정을 위한 동·서독인들의 토론 가능성까지 차단해,결국 국민 의견이 통일되기도 전에 먼저 서류상의 통일이 이뤄지고 말았던 것이다.결과적으로 서독은 동독인들이 스스로를 추스를 기회를 박탈했고,그 후유증은 지금 실업사태 등으로 고스란히독일인 전체의 과제로 넘어왔다.

통일은 시지푸스의 과제처럼 여겨진다.바위는 꼭대기에머무르는 법이 없이 언제나 굴러내리려 한다.독일과 달리한국은 300만이 넘는 인명을 앗아간 격렬한 전쟁을 치렀으며 한국 바깥에 이 나라 통일을 장려할 강대국이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독일 통일에 고르바초프가 도움이 됐듯이제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인들이 원하는 대로 통일을하게끔 눈감아 줘야 한다.그러나 상황은 별로 희망적이지않다.미국은 자신의 위력과 전권(全權)을 확인하기 위해늘 새로운 적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한국에서도 언젠가 통일이 되면 한국 국민들은 잠깐 동안의 기쁨과 함께 지금까지는 알지 못한 새로운 고민거리를안게 될 것이다.통일을 향해 나아가는 힘겨운 그 노정에서,독일이 겪은 실수를 한국민이 꼭 반복해야 할 이유는 없다.그런 의미에서 몇가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북한 사람들을 동등한 시민으로서 존경해야 한다.서독인들은 동독인을 늘 징징거리는,그래서 점점 부담스러워지는 가난한 친척쯤으로 여겼다.그 결과는 오늘날까지도이어져 대부분의 동독인들이 스스로를 독일의 이등시민으로 여기고 있다.한국에서는 상대방의 체면을 유지시켜 주면서 대화할 수 있도록 항상 남에 대한 존중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둘째,통일의 가능성이 열린다 해도 너무 서두르지는 말라.독일에서도 단숨에 통일을 하지 않고 두 국가의 연합체제(연방제)라는 과도기를 거쳐야만 했다.서독 통화를 성급히 도입함에 따라 많은 것이 파괴됐고,그 결과 행복한 시간은 잠깐이었다.일단 연합체제 안에서 남한이 북한에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다면,훗날 두 국가가 완전히 하나로 통일될 때 북한인들은 남한 사람들과 대등한 파트너로 등장할수 있을 것이다.

셋째,두 국가로 분단된 한민족에게는 문화적 토대가 중요하다.독일의 경우 동·서독이 이데올로기와 경제적 수준이 서로 달랐지만,문화적 실체만은 결코 나뉘어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었다.통일후 서독에선 동독의 예술을 어용예술이라고 비방하며 역사의 쓰레기더미에 던지려고 했다.그러나 이러한 검열은 문화예술인의 저항으로 관철될 수 없었다.동독과 서독의 펜클럽도 오랜 논쟁끝에 결국 하나가 되었다. 남북한 간에도 모든 것은 분단됐지만 문화만은 분단에 저항해야 하고 유대감을 지속해야 한다.이게 진정한 통일의 기초가 될 것이다.

정리 임창용·심재억기자 sdragon@
2002-05-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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