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법화경에 따르면 우담바라는 3000년에 한 번씩 석가여래나 지혜의 왕 금륜명왕(金輪明王)과 함께 나타난다는상상 속의 식물이다.많은 불교신자들은 우담바라 소식이있을 때마다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모여든다.이같은 친견과 경배 소동(?)은 비단 불교 신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2년전 서울 남쪽 청계산 자락의 청계사와 관악산 연주암에 우담바라 소식이 있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전국에서 한창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을 때 ‘풀잠자리 알’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 곤충학자의 발언은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왔었다.불교계 내부에서도 찬반논란이 불거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논란은 ‘우담바라’ 행렬을 흐트려놓지 못했다.
한국불교대사전에 등장하는 우담바라의 정의는 ‘우담발화라고도 하며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실 때에 비로소 핀다고 한다.’라는 뜻과‘풀에 청령(잠자리)의 난자(알)가 붙은 것’으로 돼 있다.우담바라는 이미 단순한 불교의 상서로운 일에 머물지 않는다.오히려 한 편에선 상업성을 의식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불교계 내부에서조차 “헛된현상으로 불교의 실체를 오염시켜선 안된다.”는 불만의목소리가 공공연하다.그럼에도 우담바라에 이처럼 사람들이 몰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한창인 충남 태안 안면도 꽃박람회에는 중국 원난(雲南)성에서 들여온 콩과식물인 무초(舞草)가 단연 인기다.잔잔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잎이 위아래로 흔들린다고해서 이름지어졌단다.많은 식물들이 조용한 음악에 반응한다는,입증된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아드는 모습은,원초적이고 순수한 감정적 공감의 현상이 아닐까.그렇다면 ‘풀잠자리 알’ 우담바라에 몰리는 호기심과 ‘춤추는 풀’ 무초에 쏠리는 관심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최근 ‘막가파식’ 무차별 살인으로 세상이 요동쳤다.범인들이 “신용카드 빚을 갚으려 했다.”면서 잔인한 범행 끝에 덤덤한 말투로 쏟아내는 말들은 무감정한 냉혹함으로살벌함을 더한다.많은 학자들은 이같은 범행을 ‘현실에대한 불만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로 해석한다.
실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믿으며위로받고자 하는,신비스러움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여 의지하고자 하는 인간 마음에서 피어난 우담바라와 무초.답답하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저지른 막가파식 만행.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모두 혼탁한 사회상에서 오는 심리의 표출은 아닐지….
김성호기자kimus@
2년전 서울 남쪽 청계산 자락의 청계사와 관악산 연주암에 우담바라 소식이 있었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전국에서 한창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을 때 ‘풀잠자리 알’에 지나지 않는다는 한 곤충학자의 발언은 적지않은 파장을 몰고왔었다.불교계 내부에서도 찬반논란이 불거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논란은 ‘우담바라’ 행렬을 흐트려놓지 못했다.
한국불교대사전에 등장하는 우담바라의 정의는 ‘우담발화라고도 하며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실 때에 비로소 핀다고 한다.’라는 뜻과‘풀에 청령(잠자리)의 난자(알)가 붙은 것’으로 돼 있다.우담바라는 이미 단순한 불교의 상서로운 일에 머물지 않는다.오히려 한 편에선 상업성을 의식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불교계 내부에서조차 “헛된현상으로 불교의 실체를 오염시켜선 안된다.”는 불만의목소리가 공공연하다.그럼에도 우담바라에 이처럼 사람들이 몰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한창인 충남 태안 안면도 꽃박람회에는 중국 원난(雲南)성에서 들여온 콩과식물인 무초(舞草)가 단연 인기다.잔잔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잎이 위아래로 흔들린다고해서 이름지어졌단다.많은 식물들이 조용한 음악에 반응한다는,입증된 과학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찾아드는 모습은,원초적이고 순수한 감정적 공감의 현상이 아닐까.그렇다면 ‘풀잠자리 알’ 우담바라에 몰리는 호기심과 ‘춤추는 풀’ 무초에 쏠리는 관심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최근 ‘막가파식’ 무차별 살인으로 세상이 요동쳤다.범인들이 “신용카드 빚을 갚으려 했다.”면서 잔인한 범행 끝에 덤덤한 말투로 쏟아내는 말들은 무감정한 냉혹함으로살벌함을 더한다.많은 학자들은 이같은 범행을 ‘현실에대한 불만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로 해석한다.
실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존재하는 것으로 믿으며위로받고자 하는,신비스러움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여 의지하고자 하는 인간 마음에서 피어난 우담바라와 무초.답답하고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저지른 막가파식 만행.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모두 혼탁한 사회상에서 오는 심리의 표출은 아닐지….
김성호기자kimus@
2002-05-0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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