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 허병섭씨 부부의 ‘넘치는 생명세상 이야기’.
또 한 해가 시작됐다.고만고만한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될 것이고,그런 가운데 희로애락이 엇갈릴 것이다.
어쩌면 더 가파르게,정신없이 굴러갈지도 모른다.하루 계획을 아침에 세우듯 일년 계획을 짜느라 분주한 때 ‘삶의 숨고르기’를 권하는 책이 나왔다.
‘넘치는 생명세상 이야기’(함께읽는책)는 지난 96년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귀농한 허병섭(전 빈민선교운동 목사·61)·이정진(55) 부부의 생태농업 체험기를 담았다.
지은이가 말하는 ‘귀농’은 도시생활에 찌든 이들에게그저 물,흙,바람,산과 들이 있는 자연을 연상시키는 ‘낭만적 목가(牧歌)’에 머물지 않는다.그는 “도시의 생산과 소비,권력과 힘,쾌락과 즐김,상업과 상품,자본의 축적과이윤 창출,경쟁과 투쟁,이기주의와 개인주의 따위와 관련된 도시적 가치관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노동을 즐겨야 가능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허병섭씨는 흙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기까지 다양한 삶의 현장을 찾아다녔다.목사로서 빈민선교활동에 뛰어들었고 교회를 세워 지역운동을 펼치는 등 70-80년대를 민주화·인권운동으로 도시 빈민과 함께 보냈다.그러나 어느 날문제의 본질이 ‘도시’에 있음을 깨닫고 ‘자연’에 몸을 던졌다.성직도 반납했다.
책은 크게 남편 허병섭씨와 부인 이정진씨의 글로 나눠져 있다.이들이 귀농을 결정하고 마땅한 곳을 찾아다닐 때“뭐 하러 시골까지 내려오려 하느냐?”는 이장님의 우려도 들었다.또 “혹시 마약을 재배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라는 ‘의심’도 받았다.하지만 이들은 강한 의지와 성실함으로 ‘땅의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책을 열어가면 그 과정에서 부닥친 어려움과 진솔한 내용들을 만날 수있다.특히 화학비료 대신에 유기농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몸소 옮기는 과정은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에 대한경고로 들린다.
일단 땅과 하나가 되자 지은이의 관심은 공동체조직과 지역주민의 문화·교육으로 넓혀진다.이 꿈은 ‘푸른꿈 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 세우기로 이어졌다.
부인이정진씨의 이야기는 더욱 실감난다.그는 남편과는달리 궂은 일도 해보지 않았고 시골서 살아본 적이 없는‘진짜 서울내기’다.처음엔 지렁이나 뱀을 보고 놀라 몸서리도 쳤지만 이런 소동은 오래가지 않았다.전교조와 참교육시민모임 등에서 일한 적이 있는 그다.남편의 제의에선뜻 뜻을 함께 한 이씨의 ‘작은 철학’은 곧 초보 농사꾼을 땅의 사람으로 만든다.요즘은 누가 “시골,살만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러문요,너무 좋아요”라는 대답이총알처럼 튀어나온다고 밝힐 정도다.
책 곳곳에 드러나는,이웃 아낙들과 나누는 넉넉한 대화풍경은 씹을수록 구수한 나물 맛이다.여기에 ‘섬세한 묘사’라는 고추장이 버무려져,책을 놓을 겨를 없이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에 빠지다 보면 입가에 여유있는작은 미소를 머금게 된다.8,500원.
이종수기자 vielee@
또 한 해가 시작됐다.고만고만한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될 것이고,그런 가운데 희로애락이 엇갈릴 것이다.
어쩌면 더 가파르게,정신없이 굴러갈지도 모른다.하루 계획을 아침에 세우듯 일년 계획을 짜느라 분주한 때 ‘삶의 숨고르기’를 권하는 책이 나왔다.
‘넘치는 생명세상 이야기’(함께읽는책)는 지난 96년 전북 무주군 안성면 진도리에 귀농한 허병섭(전 빈민선교운동 목사·61)·이정진(55) 부부의 생태농업 체험기를 담았다.
지은이가 말하는 ‘귀농’은 도시생활에 찌든 이들에게그저 물,흙,바람,산과 들이 있는 자연을 연상시키는 ‘낭만적 목가(牧歌)’에 머물지 않는다.그는 “도시의 생산과 소비,권력과 힘,쾌락과 즐김,상업과 상품,자본의 축적과이윤 창출,경쟁과 투쟁,이기주의와 개인주의 따위와 관련된 도시적 가치관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노동을 즐겨야 가능하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허병섭씨는 흙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기까지 다양한 삶의 현장을 찾아다녔다.목사로서 빈민선교활동에 뛰어들었고 교회를 세워 지역운동을 펼치는 등 70-80년대를 민주화·인권운동으로 도시 빈민과 함께 보냈다.그러나 어느 날문제의 본질이 ‘도시’에 있음을 깨닫고 ‘자연’에 몸을 던졌다.성직도 반납했다.
책은 크게 남편 허병섭씨와 부인 이정진씨의 글로 나눠져 있다.이들이 귀농을 결정하고 마땅한 곳을 찾아다닐 때“뭐 하러 시골까지 내려오려 하느냐?”는 이장님의 우려도 들었다.또 “혹시 마약을 재배하려는 것은 아니겠지요?”라는 ‘의심’도 받았다.하지만 이들은 강한 의지와 성실함으로 ‘땅의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책을 열어가면 그 과정에서 부닥친 어려움과 진솔한 내용들을 만날 수있다.특히 화학비료 대신에 유기농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몸소 옮기는 과정은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세태에 대한경고로 들린다.
일단 땅과 하나가 되자 지은이의 관심은 공동체조직과 지역주민의 문화·교육으로 넓혀진다.이 꿈은 ‘푸른꿈 고등학교’라는 대안학교 세우기로 이어졌다.
부인이정진씨의 이야기는 더욱 실감난다.그는 남편과는달리 궂은 일도 해보지 않았고 시골서 살아본 적이 없는‘진짜 서울내기’다.처음엔 지렁이나 뱀을 보고 놀라 몸서리도 쳤지만 이런 소동은 오래가지 않았다.전교조와 참교육시민모임 등에서 일한 적이 있는 그다.남편의 제의에선뜻 뜻을 함께 한 이씨의 ‘작은 철학’은 곧 초보 농사꾼을 땅의 사람으로 만든다.요즘은 누가 “시골,살만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러문요,너무 좋아요”라는 대답이총알처럼 튀어나온다고 밝힐 정도다.
책 곳곳에 드러나는,이웃 아낙들과 나누는 넉넉한 대화풍경은 씹을수록 구수한 나물 맛이다.여기에 ‘섬세한 묘사’라는 고추장이 버무려져,책을 놓을 겨를 없이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에 빠지다 보면 입가에 여유있는작은 미소를 머금게 된다.8,500원.
이종수기자 vielee@
2002-01-0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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