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주기자의 교육일기] “요즘 교육 정신은 없고 물질만 있어요”

[허윤주기자의 교육일기] “요즘 교육 정신은 없고 물질만 있어요”

허윤주 기자 기자
입력 2002-01-03 00:00
수정 2002-01-03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지난주 나간 옛날식 서당에 대한 기사를 보고 ‘21세기에웬 곰팡내?’하며 흉을 보셨을지 모르겠다.

‘21세기와 서당’.마치 ‘하이힐과 한복’처럼 어울릴 것같지않는 조합이다.아줌마 기자 역시 세계공용어라는 영어와 컴퓨터 공부에도 바쁜 세상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서당 취재는 신이 났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경기도 이천 산수유마을의 도립서당.모처럼 서울을 벗어나이름처럼 예쁜 마을을 만난 것도 즐거웠다.‘롤러 코스터’같은 세상에서 잠시 내려와 정지된 ‘지혜의 숲’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수염에 탕건까지 두른 서당 훈장은 우리 시대의 찌든 아저씨들과 달리 얼굴 빛이 투명했고 목소리가 맑았다.7살부터 26살까지 전국 서당을 돌며 공부했다니 요즘 기준으로는 졸업장 하나 없는 ‘무학자’(無學者)요,시대를 거꾸로 사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뭔가를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들고 있다.도심에도 서당이 한두 곳씩 늘어나 ‘옛배움’을 전파하고 있으니 무슨 까닭일까.

서당 취재를 하면서 한국을 휩싸고 있는 영어 열풍이 오버랩 됐다.뱃속에 있는 태아에게도 영어 공부를 시키고 취학전 어린이를 60만∼100만원짜리 영어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유별날 것도 없는 세상이 요즘이다.

딸에게 영어를 공부시킨 경험담을 ‘엄마,영어 방송이 들려요’라는 책으로 낸 어떤 주부는 이런 말을 했다.“아이에게 고기를 잡아주기보다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국제화시대의 생존수단은 영어이며 그것을 익혀 주는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자식이 고기를 잘 잡아먹고배곯지 않게 하려는 지극한 모정과 부정이 학교,학원,과외공부까지 시키는 것이리라.

그런데 밥 정도는 굶을 걱정이 없는 게 요즘 세상이다.아이들은 ‘밥’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가뜩이나 영양과잉인요즘에는 성인병 키우고 수명만 단축시키기 십상이다.

몸을 살찌우는 기능 위주의 지식이 지혜를 가장하는 시대….“요즘의 교육은 정신은 없고 물질만 있다”고 안타까워하는 서당 훈장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빈 지식과 생존 수단을 가르치기에 급급한 학부모들이 이런 대목을 읊조려 보는 것도 나쁘지는않을 것 같다.

‘知足可樂 務貪則憂’(넉넉함을 알면 가히 즐거울 것이요,욕심이 많으면 곧 근심이 있느니라) 이제 우리도 마음을 채워가는 교육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허윤주기자rara@
2002-01-03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