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과 칠판] 가장 겁나는 것은 마음의 단절

[분필과 칠판] 가장 겁나는 것은 마음의 단절

김계자 기자 기자
입력 2001-12-20 00:00
수정 2001-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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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일찍 시작되었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두개의 일기장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된다.하나는 학교 제출용,다른 하나는 비밀일기.어린 마음에도 내 비밀을 누군가에게보인다는 것이 참 싫었나 보다.

교사가 된 지금,일기장 검사를 할 때는 읽지 않은 척 하는것이 나의 철칙이다.맞춤법에 맞게 고쳐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가끔 한마디 참견하고 싶어 좀이 쑤셔도 참는다.다만 열심히 쓴 일기에는 별을 푸짐하게 그려 주는 것으로 마음을 대신한다.그리고 정말 참을 수 없을 때 짧은 편지를 쓴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일기장 검사를 하다가 ‘어머 어머’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여자 아이 세 명이 가수가 되고 싶어 방학동안 오디션을 보았다는 것이다.곡 고르기,안무,연습은 물론 프로덕션을 찾아가 접수,응시까지 모두 스스로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그들 중 선이의 일기 속에서 고민을 읽었다.경험삼아 딱 한번만 하기로 부모님과 약속을 했는데,친구들이 같이 하자고도 하고 자기도 하고 싶으니까 부모님을 속이고 계속했다는 것이다.그리고 내게비밀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망설이다 지켜주겠노라고 답장을 썼다.

그러나 결국 몰래 하다보니 늦은 귀가에 혼도 나고,거짓말도 하게 되고,마음도 불편하고…,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시작했다.

약 한 달의 시간이 흐른 뒤,선이의 일기 끝에 짧은 편지를썼다.

-선아,아직도 오디션 보는 것 부모님께 비밀이니?진짜 하고싶다면 이제는 허락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비밀은 오래 지켜지기 힘들고,몰래 하는 것은 그만큼 더 힘들단다.조리있게 말씀드리고 설득해 보렴. 일주일 후 일기 끝에 짧은편지가 눈에 띄었다.

-엄마와 아빠한테는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엄마는 지금은해도 되지만 중학교 때부턴 이런 거란 걸 알았으니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번졌다.드디어 짧은 경험과 마음 고생으로 해결된 것이다.*^^* 표시를 크게 그려 넣었다.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면서 가장 겁나는 것은 마음의 단절이다.연습이나 정답이 없기에 마음의 문 마저 닫혀 버리면 다음엔 길이 없기 때문이다.그래서 난 언제나 시침을 뚝 떼고아이들의 일기를 읽는다.

▲김계자 서울 서원초등교사
2001-12-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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