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에 시골집에 내려갔다가 나는 헛간 구석에 밀쳐놓은 낡은 재봉틀을 보았다.어머니는 당신이 사용하던 물건은 쓸모없게 된 다음에도 버리지 않고 한곳에 모아두신다.그 분의 손때가 묻은 그 재봉틀도 이제는 녹슬고 고장난 폐품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재봉틀이 없었다.어머니는 옷가지 재봉질이 필요할 때면 근처 큰댁에 들러서 일을 하셨다.
큰댁에 재봉일을 하러 갈 때마다 한숨을 내쉬거나 속상해하시는 것 같았다.당신의 재봉틀을 마련하는 것이 그분의소원이었다.큰어머니가 애용하던 그 손재봉틀은 돌아가는소리가 나직하고 부드러워서 무척 듣기 좋았던 기억이 난다.어린 나도 심심하면 큰댁에 들러 휘파람을 불면서 큰어머니며 사촌 누나가 손재봉틀을 돌리는 모습을 재미있게바라보곤 했다.아니 그것이 내 중요한 일과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우리 집에 처음 그 재봉틀을들여놓던 장면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방과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낯선 사람들이발재봉틀을 방안에 들여놓고 있었다.어머니는 들뜬 표정으로 재봉틀을 샀다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날부터 어머니와 나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어머니는 그 재봉틀을 몹시도 애지중지하셨다.늘 몸통을 닦고기름칠하며 매만지셨다.원래 손장난이 심했던 나는 기계돌아가는 소리와 작동 원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에,틈만 나면 어머니의 눈을 피해 재봉틀을 만졌다.이따금 어머니에게 들켜 눈물이 나도록 혼이 나곤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더 이상 재봉틀을 만지지 않으셨다.사실 기성복이 범람하는 오늘날재봉틀은 장식품이라면 모를까 집안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다.혼숫감 목록에서 재봉틀이 사라진 것도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머니가 재봉틀을 멀리하게 된 것은 이런 시대적추세의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니다. 그분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시대의 추세와는 담을 쌓고 살아오셨다. 그 기계가안방에서 골방으로 사라진 것은 순전히 그분의 기력이 쇠잔하고 눈마저 침침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은 결국 산산이 부서진다.그재봉틀은 곧바로 고장이 났고 골방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그러다가 마침내 허름한 헛간 한 구석으로 밀려난 것이다.
어머니의 재봉틀에는 어렵던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 추억과 함께 그분의 쇠잔한 모습과 우리 가족의 역사가무수한 잔영을 만들며 스쳐 지나간다.그 녹슨 재봉틀은 아무래도 이 풍요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어찌 재봉틀 뿐인가. 쇠잔한 어머니의 모습도 더 이상 이 시대와 조화를이루지 못한다.
어머니의 배웅을 받고 고향집을 떠나오면서 나는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 있었다.사실 나는 그 재봉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그러니까 그 동안 어려운 시절의 삶의흔적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셈이다. 나보다 더 나이어린 세대는 고단함으로 단련된 그런 삶의 분위기를 아예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너무 친숙해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이 시대에도 때로는 어려운 시절의 기억과 생활을 되새겨볼 일이다.어렵고고단해도 그것을 참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한다.사실 21세기의 사회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이미 수년전에 겪었듯이,우리의 경제와 삶의 터전이 예고 없이 추락할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미래를 위하여 어린 세대에게 참고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하는 일은 아마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재봉틀이 없었다.어머니는 옷가지 재봉질이 필요할 때면 근처 큰댁에 들러서 일을 하셨다.
큰댁에 재봉일을 하러 갈 때마다 한숨을 내쉬거나 속상해하시는 것 같았다.당신의 재봉틀을 마련하는 것이 그분의소원이었다.큰어머니가 애용하던 그 손재봉틀은 돌아가는소리가 나직하고 부드러워서 무척 듣기 좋았던 기억이 난다.어린 나도 심심하면 큰댁에 들러 휘파람을 불면서 큰어머니며 사촌 누나가 손재봉틀을 돌리는 모습을 재미있게바라보곤 했다.아니 그것이 내 중요한 일과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우리 집에 처음 그 재봉틀을들여놓던 장면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방과후에 집에 돌아왔을 때 낯선 사람들이발재봉틀을 방안에 들여놓고 있었다.어머니는 들뜬 표정으로 재봉틀을 샀다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날부터 어머니와 나의 숨바꼭질이 시작되었다.어머니는 그 재봉틀을 몹시도 애지중지하셨다.늘 몸통을 닦고기름칠하며 매만지셨다.원래 손장난이 심했던 나는 기계돌아가는 소리와 작동 원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에,틈만 나면 어머니의 눈을 피해 재봉틀을 만졌다.이따금 어머니에게 들켜 눈물이 나도록 혼이 나곤 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더 이상 재봉틀을 만지지 않으셨다.사실 기성복이 범람하는 오늘날재봉틀은 장식품이라면 모를까 집안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다.혼숫감 목록에서 재봉틀이 사라진 것도 상당히 오래 전의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어머니가 재봉틀을 멀리하게 된 것은 이런 시대적추세의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니다. 그분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 시대의 추세와는 담을 쌓고 살아오셨다. 그 기계가안방에서 골방으로 사라진 것은 순전히 그분의 기력이 쇠잔하고 눈마저 침침해졌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은 결국 산산이 부서진다.그재봉틀은 곧바로 고장이 났고 골방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었다.그러다가 마침내 허름한 헛간 한 구석으로 밀려난 것이다.
어머니의 재봉틀에는 어렵던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 추억과 함께 그분의 쇠잔한 모습과 우리 가족의 역사가무수한 잔영을 만들며 스쳐 지나간다.그 녹슨 재봉틀은 아무래도 이 풍요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어찌 재봉틀 뿐인가. 쇠잔한 어머니의 모습도 더 이상 이 시대와 조화를이루지 못한다.
어머니의 배웅을 받고 고향집을 떠나오면서 나는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 있었다.사실 나는 그 재봉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그러니까 그 동안 어려운 시절의 삶의흔적들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던 셈이다. 나보다 더 나이어린 세대는 고단함으로 단련된 그런 삶의 분위기를 아예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너무 친숙해있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이 시대에도 때로는 어려운 시절의 기억과 생활을 되새겨볼 일이다.어렵고고단해도 그것을 참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한다.사실 21세기의 사회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이미 수년전에 겪었듯이,우리의 경제와 삶의 터전이 예고 없이 추락할 위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미래를 위하여 어린 세대에게 참고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하는 일은 아마 우리 세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
2001-10-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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