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서예가·전각가(篆刻家),근대 서화사(書畵史)연구가인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1864-1953)선생이 문화관광부의 8월 문화인물로 선정됐다.
위창 선생은 선각자였던 부친 오경석(吳慶錫)의 영향으로젊어서부터 개화사상에 눈떠 1902년 개화당 역모사건으로일본으로 망명했다.귀국 후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앞장섰다.‘한성주보’의 기자를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만세보’와 ‘대한민보’의 사장을 지냈다.해방후에는 민족대표의 상징적 인물로 추앙받으며 서울신문(대한매일 전신)초대 사장을 역임하고 여러 정당의 고문으로추대됐다.
역관이자 서화가였던 부친으로부터 전각을 배워 10대 때부터 전각에 몰두,당시까지 신표(信標)정도로 이해되던 전각을 본격적인 예술품으로 끌어올렸다.서예에서도 단아한 서풍을 창안하는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역대서화가 문헌사료집인 ‘근역서화징’등을 편찬,귀중한 연구자료로 남겼다.문화부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알리기 위해 ▲기념전시회 및 전시특강(27일∼8월28일,예술의 전당) ▲가훈 써주기(8월15,25∼29,온양문화원) ▲서예전시회(8월25∼29일,온양문화원)등의 기념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김주혁기자 jhkm@
위창 선생은 선각자였던 부친 오경석(吳慶錫)의 영향으로젊어서부터 개화사상에 눈떠 1902년 개화당 역모사건으로일본으로 망명했다.귀국 후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3·1운동에 앞장섰다.‘한성주보’의 기자를 지낸 경력을 바탕으로 ‘만세보’와 ‘대한민보’의 사장을 지냈다.해방후에는 민족대표의 상징적 인물로 추앙받으며 서울신문(대한매일 전신)초대 사장을 역임하고 여러 정당의 고문으로추대됐다.
역관이자 서화가였던 부친으로부터 전각을 배워 10대 때부터 전각에 몰두,당시까지 신표(信標)정도로 이해되던 전각을 본격적인 예술품으로 끌어올렸다.서예에서도 단아한 서풍을 창안하는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역대서화가 문헌사료집인 ‘근역서화징’등을 편찬,귀중한 연구자료로 남겼다.문화부는 그의 생애와 업적을 알리기 위해 ▲기념전시회 및 전시특강(27일∼8월28일,예술의 전당) ▲가훈 써주기(8월15,25∼29,온양문화원) ▲서예전시회(8월25∼29일,온양문화원)등의 기념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김주혁기자 jhkm@
2001-07-2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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