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실없는 기약

[굄돌] 실없는 기약

오명희 기자 기자
입력 2001-07-12 00:00
수정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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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나알리더라… 실없는 그 기이야악에 보옴 나알은 가아안다” 내가 자주 부르는 애창곡이고 내 그림의 명제이기도 하다.

새빨간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면 왠지 너무 헤프고 자칫 천해보일 것 같고 새파란 치마가 휘날리더라? 애초에 휘날릴것 같지가 않다.어쩌면 그리도 연분홍 치마인지.매번 감탄을 한다.

실없는 그 기약도 그렇다.우리가 살면서 기약이라고 하는대부분의 것들은 실없는 기약이 되기 일쑤다.실없는 기약이라 탓하거나 원망치 않고 그저 그 기약에 봄날이 간다지 않는가.

온종일 화판만 노려보다 애꿎은 강냉이만 축내고 집으로 돌아온다.밤에도 뒤척뒤척 잠을 이루지 못한다.좀더 때묻은 치맛자락 같은 거 없을까.너무 깔끔하지 않으면서도 결코 지저분하지 않고 실없는 그 기약도 그 치맛자락으로는 두루두루보듬을 수 있는 넉넉한 정이 담기고 사람 냄새 흙 냄새 나는 그런 작업을 하고 싶은데 이 나이 쯤에는….

그래 꼭 이 나이 쯤에는 작업도 그 나이 만큼의 때가 은근히 배어 다소 뻔뻔스러움 마저도 아주 자연스러운,그래서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인간이 이중적 존재라는 것은 심리학을 하는 이들의 기본적인 전제이다.각성과 도취와 당위,지성과 관능,계산과 몽상그 가운데 방황하고 고민하는 인격,인간의 이중성을 표현하기에는 이중적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그 이중성은 일목요연하게 간파되지 않는다.따라서 시각 자체의 분화를 요한다.

일상에,그저 꽃이 피고 나무가 있는 풍경위로 스카프가 바람을 타고 날다가 이제는 그 모든 얘기들을 스카프,아니 이제는 보자기가 더 어울리겠다.보자기가 감싸 안고 그 위에 천연덕스럽게 꽃이 핀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중에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도(月下情人圖)’라는 그림이 있다.그 화제는 ‘양인심사양인지(兩人心事兩人知)’ 즉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내마음 속에 이는 수없이 많은 상념,기쁨,슬픔.동경과 서럽고감미로운 추억들.오늘도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오명희 한국화가수원대 교수
2001-07-12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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