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풍경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를 직접 눈여겨볼 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지난해부터 문화계와 지식인사회에서 ‘문화권력’이라는말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급기야는 열띤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그동안 어떤 분야에서 뚜렷한 성취를이루었다고 평가받아온 예술인이나 학자 또는 일부 문예지가 오히려 ‘문화권력’의 주체라는 비난에 휩싸인 것이다.
40여년간 문예비평의 외길을 걸어온 학계 원로가 표절논쟁에 휘말리는가 하면,한국 시단의 대명사로 알려졌던 한저명한 시인은 죽은 후에 그 정치적 행로 때문에 거센 공격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 패권주의가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린 것도최근의 일이다.대형신문들이 언론개혁의 와중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 것도 경우는 약간 다르겠지만,그 근저에는 지금까지의 기득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려는 요즈음의 분위기와 어느 정도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일들을 보면서 나는 이 시대가 기존의 모든 권위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변혁의 물살을타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이야말로 탈 중심,탈 권위,탈 권력의 ‘탈 증후군’을심하게 앓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여러 곳에서 비롯하겠지만,특히 젊은세대 사이에 ‘극단적 평등주의’라고 할만한 태도와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한 세대에 걸쳐서 저명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행태를 무수히 목격해 왔다.
사회적 평판이 그 개인의 사람됨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상식이 되었다.많은 명사들이 때로는 권력에 아부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심지어는 거짓을일삼는 사례를 본다. 오죽하면 ‘장’이라는 직함을 지닌사람은 의심할 만하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왔겠는가.
언젠가 나는 우리사회의 이러한 풍조를 빗대어 ‘사기 사회’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때 그런 표현은 너무 자기비하의 어투가 아닌가 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너무과장된 어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말이 우리사회의한 단면을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없다.
모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 극단적 평등주의를 어떻게생각해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환멸을 느낄 것이다. 특정한 분야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쌓아온 평판과 권위를 평등주의라는 이름 아래 깔아뭉개는 이시대의 풍조를 말세라고 개탄할 것이다.
한편 또다른 사람들은 기득권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불공정한 경쟁체제와 불평등 구조를 이번에야말로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그들은 젊은세대의 평등주의적 분위기에서 그런 개혁을 향한 가능성을 확인할 것이다.
사실 평판과 권위에도 진실이 있다.한 사람의 성실함과열정과 참다운 삶을 통해서 형성된 권위가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가식과 위선을 토대로 쌓아올린 평판과 또 그 권위에 기대어 이 경쟁적인 사회에서 무임승차하려는 태도도엿보인다.
문제는 오늘날 다수의 사람들이 뒤의 경우가 더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그들이 어떤 기득권과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도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정서가뿌리깊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분위기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이 시대의 추세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남아있는 약간의 기득권과 권위조차도 냉철하게 다시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이말을 권력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한다.
▲ 이영석 광주대교수
40여년간 문예비평의 외길을 걸어온 학계 원로가 표절논쟁에 휘말리는가 하면,한국 시단의 대명사로 알려졌던 한저명한 시인은 죽은 후에 그 정치적 행로 때문에 거센 공격을 받기도 했다.
서울대 패권주의가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린 것도최근의 일이다.대형신문들이 언론개혁의 와중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 것도 경우는 약간 다르겠지만,그 근저에는 지금까지의 기득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으려는 요즈음의 분위기와 어느 정도 관련된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일들을 보면서 나는 이 시대가 기존의 모든 권위를 무너뜨리는 거대한 변혁의 물살을타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이야말로 탈 중심,탈 권위,탈 권력의 ‘탈 증후군’을심하게 앓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여러 곳에서 비롯하겠지만,특히 젊은세대 사이에 ‘극단적 평등주의’라고 할만한 태도와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우리는 지난 한 세대에 걸쳐서 저명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행태를 무수히 목격해 왔다.
사회적 평판이 그 개인의 사람됨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상식이 되었다.많은 명사들이 때로는 권력에 아부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심지어는 거짓을일삼는 사례를 본다. 오죽하면 ‘장’이라는 직함을 지닌사람은 의심할 만하다는 우스갯 소리까지 나왔겠는가.
언젠가 나는 우리사회의 이러한 풍조를 빗대어 ‘사기 사회’라고 말한 적이 있다.그때 그런 표현은 너무 자기비하의 어투가 아닌가 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너무과장된 어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말이 우리사회의한 단면을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없다.
모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 극단적 평등주의를 어떻게생각해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환멸을 느낄 것이다. 특정한 분야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쌓아온 평판과 권위를 평등주의라는 이름 아래 깔아뭉개는 이시대의 풍조를 말세라고 개탄할 것이다.
한편 또다른 사람들은 기득권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불공정한 경쟁체제와 불평등 구조를 이번에야말로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그들은 젊은세대의 평등주의적 분위기에서 그런 개혁을 향한 가능성을 확인할 것이다.
사실 평판과 권위에도 진실이 있다.한 사람의 성실함과열정과 참다운 삶을 통해서 형성된 권위가 있다.다른 한편으로는 가식과 위선을 토대로 쌓아올린 평판과 또 그 권위에 기대어 이 경쟁적인 사회에서 무임승차하려는 태도도엿보인다.
문제는 오늘날 다수의 사람들이 뒤의 경우가 더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그들이 어떤 기득권과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도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정서가뿌리깊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분위기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그것은 이 시대의 추세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에게 남아있는 약간의 기득권과 권위조차도 냉철하게 다시 바라볼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이말을 권력의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전했으면 한다.
▲ 이영석 광주대교수
2001-07-0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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