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빗속 이사

[굄돌] 빗속 이사

황인홍 기자 기자
입력 2001-06-28 00:00
수정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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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살이라고 하던가? 어릴 적에 어머니가 받아온 내 점괘 중에 그런 것이 있었다.다 좋은데 여기 저기 돌아다닐운명을 타고났다고 했다.그 무렵 나는 밖에 나가기보다는주로 집 안에서 뭉그적거리는 편이었는데도,어머니는 팔자가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며 걱정하셨다.

그러나 어머니가 만나서 점괘를 받은 사람은 점쟁이가 아닌 사기꾼임에 틀림없다.나는 지금까지 객지를 떠돈 적도없으려니와,심지어 이사도 딱 두 번 했을 뿐이다.서울이라는 도시에 살면서 이 정도면 오히려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아닐까. 오죽하면 초등학교 시절 소원 중에 하나가 전학한 번 해보는 것이었을까.그 드문 이사 중 두 번째 것도불과 며칠 전에 했다.오랜 가뭄으로 온 국민이 고통을 받다가 모처럼 내린 단비에 환호하던 그 날,우리 이사 날은하필 그 날이었다.악전고투,허둥대며 이삿짐을 나르는 모습이 안 되었던지 다들 위로의 말을 건네왔다.

“비가 와서 어쩌면 좋아.” 내용은 분명 걱정하는 말인데,얼굴들은 반쯤은 웃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래,그 동안의 가뭄을 해소하는비니까반가울 것이다.이해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노골적으로즐거운 표정을 지을까.

“할 수 없지,뭐.그래도 이렇게 비가 내려 다행이요.” 이쯤 대답을 하면서도 비에 젖어 망가지고,미끄러져 깨지는 가구들을 보자니 속은 다 뒤집어지고 있었다.그러나 속내를 모르는 상대방은 오히려 한 마디를 더 붙인다.

“그래,설사 비를 안 오게 할 재주가 있더라도 그럴 상황이 안 되니….” 이런,걱정스런 말투라도 끝까지 해주면 안 되나.사실 그랬다.더불어 사는 세상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비를 맞으며 나도 만세를 불러야 옳을 것이다.그럴 수 있어야겠지만 그저 앞가림에 급급한 소시민인 나는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아니,그런 정도가 아니다.만약에 내가 비를 다스리는신이었다면 나는 어찌 했을까? 나는 이사가 끝날 때까지비를 늦추었을 것이다.또 만약에 점쟁이가 그 일을 한다면,그는 점괘에 떨어지는 날까지 비를 미룰 것이다.

황인홍 한림의대 교수
2001-06-28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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