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가훈, 그 황당한 경험

[굄돌] 가훈, 그 황당한 경험

황인홍 기자 기자
입력 2001-06-20 00:00
수정 2001-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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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가훈이 뭐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입을 다물어야한다.번듯한 가문이 아니어서인지 우리 집안에는 가훈이라는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게다가 그동안 나에게 그것을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가 첫 아이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사고가 터졌다.저녁밥을 먹다가 아이가 느닷없이 내게 물었다.

“아빠,우리 집 가훈이 뭐예요?” 그 순간 나는 기특함보다는 황당함을 느꼈던 것 같다. 반찬 투정이나 하는 그런나이에 어디서 가훈이라는 말을 들었을까.

“응,우리 집 가훈은 ‘주는 대로 먹자’야.” 내가 그렇게 농담으로 대꾸를 하자 아내도 한 몫을 거들었다.

“아니야.제대로 하자면 ‘주는 대로 먹고,때리는 대로 맞자’야.” 우리는 그것이 아이의 학교 숙제라는 사실은 상상도 하지못한 채 마냥 웃었다.

그러나 주말, 아이가 돌려 받아온 과제물 노트를 보면서우리는 기겁을 해야 했다. 거기에는 그 가훈이 빨간 색 볼펜으로 밑줄을 달고 그대로 적혀 있고, 그 옆에 선생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런 망신이 있나.아이에게 그 아래에다가 예쁜 글씨로‘성실’이라고 써서 다시 내도록 하였다.

성실이라….하필 그 말을 쓰도록 한 것은 아버님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아버님은 말수가 적으신 분이어서,아버님께 들은 이야기라면 그저 야단을 맞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가끔은 당신이 세상을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 때 어렴풋이 느꼈던 그 이야기들,그리고 내게 보여주셨던 그 모습.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그것을 성실이라는 단어로 정리하여 간직해 왔다.

아내는 아이들 숙제에 그렇게 적었으니 이참에 그것을 가훈으로 정하자고 하였다.

뜻도 좋으려니와,굳이 따지자면 아버님께 받은 정신적인유산이니 모양새도 좋을 것이다.그러나 나는 아직 마음을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님은 그런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으셨다.당신은 행동으로 자식들을 가르치셨고,그것은 내 평생을 비춰주는등불이 되고 있다.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유산을 물려주고싶은 욕심을 떨칠 수 없다.

▲황인홍 한림대교수 가정의학
2001-06-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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