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칼럼] ‘고리사채’ 해법찾기

[대한칼럼] ‘고리사채’ 해법찾기

박건승 기자 기자
입력 2001-04-13 00:00
수정 2001-04-13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석승억(石承億·34)씨는 이른바 신용불량자였다.1996년 창업컨설팅 회사를 차렸다가 부도를 내고 남은 것은 사채·카드빚 1,280만원뿐이었다.사채업자를 피해 다니다 보니 주민등록은 말소됐고 3개월간 옥살이도 했다.요즘은 신용불량자재활을 위한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석씨는 최근 펴낸 ‘신용불량공화국’이란 저서에서 악몽의 시절을 이렇게 떠올리고 있다.“해결책은 오직 자살밖에없다고 생각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심장뛰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뭔가 무거운 것이 내 숨통을막고 있었기에 배가 고파도 먹을 수 없었다.전화벨 소리만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석씨의 고통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헤어나려고 몸부림치며 목청껏 소리쳐 도움을 구걸했으나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죽는 것이 사는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도둑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요즘 들어 급전(急錢) 대출을 미끼로 서민을 갈취하는 사채업이 날로 기승을 부리는 것은 개탄스럽다.전국적으로 3,000여곳의 사채업소가 난립한 가운데 일본계 고리업자까지가세해서 나라가 온통 사채꾼의 무대가 돼버린 듯하다.그러는 사이에 석씨처럼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사람이 23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연 1,440%라는 고금리를 받는 악덕 사채업자가 나오는가 하면,심지어 20대 여성에게 150만원을 꿔주며 ‘신체포기 각서’까지 요구하는 세태이니 서글픔이앞선다.

일제때도 이른바 ‘왜일수’라는 고리채가 있었다.일본인들은 한국 영세상인들에게 고리채를 빌려준 뒤 상환기일이지나거나 지연될 경우 가차없이 담보를 차압하거나 집과 토지를 헐값에 빼앗기 일쑤였다.문제는 요즘 이 땅의 고리업자 행태가 일제의 수법보다 더욱 악랄하고 교활하다는 점이다.당국의 방조 아래 악덕 고리업자가 날뛰고,그것이 결과적으로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가 이자제한법 부활에 여전히 난색을표명하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외환위기 이전 이자제한법이 존속하던 당시에도 음성적 사채폭리가 없었던 것은아니지만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남녀고용평등법이 있다고 해서 여성에 대한 고용불평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법이 존재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인 사회기준을 설정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해야 하는 당위성 때문이다.한국보다 금융대출 관행이 훨씬 선진화한 일본도 이자제한법을 두고 100만엔 이상 대출시 연 15%의 이자율을 초과해서 받지 못하게 한다.대만도 민법으로 연간 이자율이 20%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독일도 법원의 판례에 따라 고리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

고리채 폐해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약관법을 적용해 고리채계약을 원천 무효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당정은 어제 사채업자의 제한적 양성화를 추진키로 했으나 미봉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아무리 사채업자라고 하더라도최소한의 자본금 충족 요건은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그래야사채업자간의 완전 경쟁을 통해 금리가 낮아지고 이용자도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식 대금업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국은 부당한 채권추심행위 단속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하기 바란다.

자신의 가족이 한밤중에 정체모를 채권추심업자로부터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폭언·욕설·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가정해 보라.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인가.선진국처럼 조속히 불법 채권추심행위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 한다.부당한 채권추심행위를 24시간 접수하는 신고센터를 설치하는 것도 고리업자의 횡포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악의적인 채무자는 엄중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없다.그러나 선의의 과중채무자에 대해서는 국가와 사회가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그래야 사회정의가 바로 서고 신용사회 정착을 앞당길 수 있다.

■박 건 승 논설위원ksp@
2001-04-13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유튜브 구독료 얼마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나요?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
1. 5000원 이하
2. 5000원 - 1만원
3. 1만원 - 2만원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