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의해 징용된 조선 노무자들이 재계약에 반대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고 밥을 제대로 먹지못해 도망갔다는 내용등을 담은,일본 정부 및 기업이 작성한 서류가 처음 발견됐다.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자장암 한일문제연구원(원장 南賢주지)이 입수,2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44년 6월 22일오전 6시30분 일본 홋카이도의 스미토모(住友) 광업소에서조선인 노무자 1,200여명이 재계약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켜 120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현장 광업소장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본사인 스미토모 노동부장에게 보냈다.
보고서는 폭동과 관련한 내용의 문건을 주기적으로 본사에보냈으며 일부 문건에는 ‘폭동은 뿌리깊고 계획적인 것임을알림’ 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등 당시 조선 노무자들이 일제의 강제노역에 크게 반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문제연구원은 이와함께 28명의 노무자들이 38년과 42년형편없는 식사 때문에 도주했고 이를 막기 위해 당시 일본정부(노무계)가 마련한 방지대책 문건도 공개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경남 양산시 통도사 자장암 한일문제연구원(원장 南賢주지)이 입수,2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944년 6월 22일오전 6시30분 일본 홋카이도의 스미토모(住友) 광업소에서조선인 노무자 1,200여명이 재계약에 불만을 품고 폭동을 일으켜 120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현장 광업소장은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본사인 스미토모 노동부장에게 보냈다.
보고서는 폭동과 관련한 내용의 문건을 주기적으로 본사에보냈으며 일부 문건에는 ‘폭동은 뿌리깊고 계획적인 것임을알림’ 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등 당시 조선 노무자들이 일제의 강제노역에 크게 반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일문제연구원은 이와함께 28명의 노무자들이 38년과 42년형편없는 식사 때문에 도주했고 이를 막기 위해 당시 일본정부(노무계)가 마련한 방지대책 문건도 공개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2001-02-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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