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帝 주민학살현장 더 있다

日帝 주민학살현장 더 있다

입력 2001-02-26 00:00
수정 2001-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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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의거 당시 경기도 화성군 제암리교회뿐만 아니라 인근 수원지방 16개 마을과 5개 교회에서도 이와 비슷한만행이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또 고종황제는 일본의 식민 지배를 거부하는 내용의 문건을 파리강화 회의에 전달하려다 밀사였던 하란사(河蘭史) 전도사 등이체포되는 바람에 일본의 사주에 의해 독살됐으며,이 과정에서 황실의 외척인 윤덕영(尹德榮·순종황후 윤비의 큰아버지)이 깊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1892년부터 1934년까지 42년간 남편과 함께한국 선교사로 근무했던 미국 북감리교의 마티 윌콕스 노블선교사(여·1872∼1956)가 당시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기록한 육필일기와 문건을 통해 처음 확인됐다.이 자료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제일교회(담임목사 조영준) 역사관 김대구상임연구위원(54) 일행이 지난해 미국에서 노블 여사의 후손으로부터 입수한 것으로,최근 ‘3·1운동,그날의 기록’이란책자로 간행됐다.

‘제암리사건’과 관련,그동안 드러난 기록에는 4월15일 일본 군경이 제암리교회에 불을 지르고 23명을 살해한 데 이어고주리 마을에서 6명을 총살하는 등 모두 29명을 죽인 것으로만 돼 있다.그러나 노블 여사의 일기에 따르면,일경은 제암리교회 뿐만 아니라 4월19일을 전후해 인근 수원지방 16개마을과 5개 교회에서 추가로 주민 학살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와 있다.그는 이날자 일기에서 “그들(로이드 영국 대리공사 등)이 방문한 다섯 마을의 상황은 시체가 묻혀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암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그들이 알기로는 그 지역에서만 16개 마을이 전멸되다시피 했다”고밝혔다.‘수원지역 구조활동 보고서’에서는 “사강리에서 326채의 가옥이 불타고 1,6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생각되며,39명이 살해됐고,일경 한 명도 돌에 맞아죽었다”고 기록했다.이밖에 당시 하세가와(長谷川好道) 조선총독이제암리사건의 파문이 확산되자 “교회 재건을 위해 교회당 500엔,그리고 불탄 집 한 채당 50엔씩을 지급할 것을 약속하며 그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미국 선교사들에게 당부하며 사건 은폐를 시도한 사실도 밝히고 있다.

김대구 연구위원은 “3·1의거 당시 현장을 목격한 선교사들의 기록인만큼 사료가치가 우수하다”며 “노블 여사의 일기를 근거로 경기도 화성군 일대의 감리교회에서 자행된 일제의 만행에 대한 현지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2001-02-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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