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영토를 넓히는 젊은 소설가의 장편소설이 주목된다.
김연수의 ‘?A빠이,이상’(문학동네)은 일제강점기에 요절한천재 작가 이상(李箱)을 소설의 밭에다 성공적으로 이식한작품이다. 중학생 이상의 학력을 가진 한국인이면 합창하듯닮은꼴로 떠올리는 이상의 상(象)을 한층 또렷하게 만들었다든가 세게 흔들어버렸다는 뜻이 아니다.역사와 기억의 논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상의 동상을 데굴데굴 굴려 소설과 이야기의 밭으로 옮긴 뒤 그럴듯한 식물체로 키워냈다는뜻이다.
이상이란 진실을 추구하는 전기작가적 열성이 아니라 이상을‘먹음직한’소재로서 차근차근 해체하고 화학적으로 소화시켜가는 소설가의 욕심이 손에 잡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인상적인 낱말을제목에다 날렵하게 얹은 ‘^^빠이,이상’은 이상이 문제가아니라 김연수가 이상을 빌어 하고자 하는 소설적 ‘말’이문제다.1970년생인 작가는 그전부터 ‘무엇이 진짜고,진짜란무엇이냐’란 주제에 매달려왔다. 이 질문은 대개 진짜와 가짜는 서로 녹아들?? 마련이어서 구태여 구분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맺곤 한다.김연수의 이런 질문과 주제는 우리 삶의 실재와 허구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을 제기한다는 멋진 말로 포괄되곤 하지만,삭막한 삶이나 뜨거운 불륜같은 우리 소설 일반의 길에서 동떨어지고 엉뚱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상이란 볼륨있는 소재에 휘둘리지 않고 특유의 주제를 지켜내려는 작가의 애씀이 와닿는 ‘^^빠이,이상’은,그러나독자와 동떨어져 재미없게 저 혼자 흘러가는 소설이 아니다.
재미있다는 말이다.진짜와 가짜가 가장 통속적으로 맞부딪히는,이해하기 쉬운 진위논란으로 이야기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1937년 4월17일 사망 순간 제작된 뒤 종적이 묘연해진 이상의 데드마스크,그리고 이상이 죽기 전 썼을 수도 있고 안썼을 수도 있는 연작시 ‘오감도’의 제16편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진짜냐,가짜냐의 논란에 독자들은 끌려든다. 이런 터를 닦아놓은 뒤작가는 슬슬 자기가 생각하는 진짜 진위 문제를 내보인다.
자기들 삶에 이상?? 과도하게, 비상하게 끌어들인 사람들의진짜 삶은 무엇이냐가 그 하나이다. 또 더 높은 단계는 김해경이란 본명과 식민지 시절 총독부 건축기사라는 유망한 직업을 내팽치면서 솟아난 천재 작가 이상과,이런 문학가 이상이 아닌 자연인 김해경 가운데 ‘김해경이자 이상’이란 한인간의 삶을 문제삼을 때 어떤 것이 더 진짜냐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진위문제의 최고 층위로서 작가의 회심의 질문인, 무엇이 이상의 진짜냐라는 주제는 ‘?A빠이,이상’의 대기권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즉 식물처럼 밑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기 보다 작가가 독자의 머리에다 주입시키려고애쓰는 데 그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인 이상에 일차원적으로 기생하는 대신우리 머리 속에 있는 이상이란 이미지와 기억을 소설의 한뙈기 밭으로 개간해낸 작가의 공과 역량은 높이 살만 하다.
김재영기자 kjykjy@
김연수의 ‘?A빠이,이상’(문학동네)은 일제강점기에 요절한천재 작가 이상(李箱)을 소설의 밭에다 성공적으로 이식한작품이다. 중학생 이상의 학력을 가진 한국인이면 합창하듯닮은꼴로 떠올리는 이상의 상(象)을 한층 또렷하게 만들었다든가 세게 흔들어버렸다는 뜻이 아니다.역사와 기억의 논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이상의 동상을 데굴데굴 굴려 소설과 이야기의 밭으로 옮긴 뒤 그럴듯한 식물체로 키워냈다는뜻이다.
이상이란 진실을 추구하는 전기작가적 열성이 아니라 이상을‘먹음직한’소재로서 차근차근 해체하고 화학적으로 소화시켜가는 소설가의 욕심이 손에 잡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상의 소설 ‘날개’에 나오는 인상적인 낱말을제목에다 날렵하게 얹은 ‘^^빠이,이상’은 이상이 문제가아니라 김연수가 이상을 빌어 하고자 하는 소설적 ‘말’이문제다.1970년생인 작가는 그전부터 ‘무엇이 진짜고,진짜란무엇이냐’란 주제에 매달려왔다. 이 질문은 대개 진짜와 가짜는 서로 녹아들?? 마련이어서 구태여 구분한다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결론맺곤 한다.김연수의 이런 질문과 주제는 우리 삶의 실재와 허구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을 제기한다는 멋진 말로 포괄되곤 하지만,삭막한 삶이나 뜨거운 불륜같은 우리 소설 일반의 길에서 동떨어지고 엉뚱한 것만은 사실이다.
이상이란 볼륨있는 소재에 휘둘리지 않고 특유의 주제를 지켜내려는 작가의 애씀이 와닿는 ‘^^빠이,이상’은,그러나독자와 동떨어져 재미없게 저 혼자 흘러가는 소설이 아니다.
재미있다는 말이다.진짜와 가짜가 가장 통속적으로 맞부딪히는,이해하기 쉬운 진위논란으로 이야기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1937년 4월17일 사망 순간 제작된 뒤 종적이 묘연해진 이상의 데드마스크,그리고 이상이 죽기 전 썼을 수도 있고 안썼을 수도 있는 연작시 ‘오감도’의 제16편이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진짜냐,가짜냐의 논란에 독자들은 끌려든다. 이런 터를 닦아놓은 뒤작가는 슬슬 자기가 생각하는 진짜 진위 문제를 내보인다.
자기들 삶에 이상?? 과도하게, 비상하게 끌어들인 사람들의진짜 삶은 무엇이냐가 그 하나이다. 또 더 높은 단계는 김해경이란 본명과 식민지 시절 총독부 건축기사라는 유망한 직업을 내팽치면서 솟아난 천재 작가 이상과,이런 문학가 이상이 아닌 자연인 김해경 가운데 ‘김해경이자 이상’이란 한인간의 삶을 문제삼을 때 어떤 것이 더 진짜냐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진위문제의 최고 층위로서 작가의 회심의 질문인, 무엇이 이상의 진짜냐라는 주제는 ‘?A빠이,이상’의 대기권을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즉 식물처럼 밑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기 보다 작가가 독자의 머리에다 주입시키려고애쓰는 데 그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인 이상에 일차원적으로 기생하는 대신우리 머리 속에 있는 이상이란 이미지와 기억을 소설의 한뙈기 밭으로 개간해낸 작가의 공과 역량은 높이 살만 하다.
김재영기자 kjykjy@
2001-02-1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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