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상에서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언어의 오염이 걱정스럽다.언어란 갈고 닦는 수고에 따라 빛나는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는 반면 허투루 쓰게 되면 날이 갈수록 천박해져,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만드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말이란 기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약속이다.어떤 사물이나 사건 또는 생각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그런데어떠한 약속이든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이는 잘못된 표현을 했거나 잘못된 이해로 비롯될 수 있는 언어 불소통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말은 두 가지 책임을 전제로 한다.말하는 자는 말의 의도에 대한 책임이 있고 듣는 자는 그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있다.말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말하는 자는 말을 가려서 할 것이요,듣는 자는 헤아려서 들어야 한다.그래서 우리는 일정하게 말하고듣는 코드를 서로 맞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선행된다.말하면서 듣는 자를 배려하는 마음,그리고 들으면서 말하는 자의 본심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말에도 예의가생기고 격식이 뒤따르는 것이다.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지적이 아닐 수 없다.이 품격은 말에 대한 노력 없이 저절로 생기는것이 절대로 아니다.
유럽 강국들이 다투어 아시아나 아프리카로 식민지를 확장해 갈 때유럽인들은 식민지에 가서 살면서 수많은 노예와 하인들을 부렸다.그 시절 그들이 약자 위에서 군림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당시의문화습관을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아프리카에서 살던 귀부인들은 열 개 이상의 원주민 방언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하인들에게 명령을 했다.열 개 이상의 언어를 공부해서 의사전달의 도구로 쓸 수 있다는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그 노력의 저변에는 지배층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이는 안일함에 젖어 사는 하층구조의 인간들은 넘보기 힘든 일이다.
예전에 태국에서 생활하며 크게 느낀 바가 있다.그 나라에서도 영어가 소통되기는 하지만 생활 일반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영어를 모르는 태국인들과의사이에서 발생되기 때문에 태국어를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그래서 태국어를 공부할 참고서를 찾아 서점에 갔다가 크게 놀랐었다.일본인을 위한 태국어 자료가 대단히 훌륭하게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기 전 세계를 정복하고자하는 야욕을 불태우며 그 기초자료로 동남아 나라들의언어를 연구한 흔적이었다.우리나라가 나라 밖으로는 눈 돌릴 사이도 없이 근대사의 어두운 질곡을 겪고있을 때 일본은 이런 야망에 찬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들의 노력에 절로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약육강식의 논리에서조차 그런 것이다.지배자 측에서 피지배자의언어에 익숙해야 마음대로 그들을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쓰기 편한언어를 고집하는 사람은 결코 지배자의 위치에 서지 못한다.
그러나 지배자나 귀족의 품격은 여전히 말의 절제에 있다.자고로 귀족의 어법이나 왕궁의 어법이 까다로운 것은 말로 낭비될 수 있는 인격의 절제를 위한 것이다.
반대로 욕설이나 상스러운 표현들이 쓰기 편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고 해서마구잡이로 쓰는 일은 인격의 낭비를 가져온다.이런 점에서 인터넷에서의 문법파괴나 상스러운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나쁜 언어습관은 마땅히 인격을 갈고 닦아야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하기에 격이 있는 것처럼 듣기에도 격이 있다.들음의 격도역시 잘 말하는 훈련으로 하나씩 쌓아지는 일이다.바람직한 말하기의 습관이 바람직한 듣기 습관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쉽고 편한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힘든 존재이다.자기를 갈고 닦는 일보다는 더 쉽고 더 편한 데로 나가기 쉬운 어리석은 존재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먼저 깨달은 선지자들이 어리석은 무리를 향해 늘한탄하며 말했을는지도 모른다.무릇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니.
[안윤미 소설가]ym1209@hanmail.net
우리가 쓰는 말이란 기본적으로 사람 사이의 약속이다.어떤 사물이나 사건 또는 생각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표현하기로 한 것이다.그런데어떠한 약속이든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이는 잘못된 표현을 했거나 잘못된 이해로 비롯될 수 있는 언어 불소통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말은 두 가지 책임을 전제로 한다.말하는 자는 말의 의도에 대한 책임이 있고 듣는 자는 그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에 대한 책임이있다.말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말하는 자는 말을 가려서 할 것이요,듣는 자는 헤아려서 들어야 한다.그래서 우리는 일정하게 말하고듣는 코드를 서로 맞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이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선행된다.말하면서 듣는 자를 배려하는 마음,그리고 들으면서 말하는 자의 본심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기에 말에도 예의가생기고 격식이 뒤따르는 것이다.말에도 품격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지적이 아닐 수 없다.이 품격은 말에 대한 노력 없이 저절로 생기는것이 절대로 아니다.
유럽 강국들이 다투어 아시아나 아프리카로 식민지를 확장해 갈 때유럽인들은 식민지에 가서 살면서 수많은 노예와 하인들을 부렸다.그 시절 그들이 약자 위에서 군림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당시의문화습관을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아프리카에서 살던 귀부인들은 열 개 이상의 원주민 방언을 자유롭게 구사하며 하인들에게 명령을 했다.열 개 이상의 언어를 공부해서 의사전달의 도구로 쓸 수 있다는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그 노력의 저변에는 지배층으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것이다.이는 안일함에 젖어 사는 하층구조의 인간들은 넘보기 힘든 일이다.
예전에 태국에서 생활하며 크게 느낀 바가 있다.그 나라에서도 영어가 소통되기는 하지만 생활 일반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영어를 모르는 태국인들과의사이에서 발생되기 때문에 태국어를 공부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그래서 태국어를 공부할 참고서를 찾아 서점에 갔다가 크게 놀랐었다.일본인을 위한 태국어 자료가 대단히 훌륭하게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기 전 세계를 정복하고자하는 야욕을 불태우며 그 기초자료로 동남아 나라들의언어를 연구한 흔적이었다.우리나라가 나라 밖으로는 눈 돌릴 사이도 없이 근대사의 어두운 질곡을 겪고있을 때 일본은 이런 야망에 찬연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들의 노력에 절로 숙연해지는 기분이었다.약육강식의 논리에서조차 그런 것이다.지배자 측에서 피지배자의언어에 익숙해야 마음대로 그들을 부릴 수가 있는 것이다.쓰기 편한언어를 고집하는 사람은 결코 지배자의 위치에 서지 못한다.
그러나 지배자나 귀족의 품격은 여전히 말의 절제에 있다.자고로 귀족의 어법이나 왕궁의 어법이 까다로운 것은 말로 낭비될 수 있는 인격의 절제를 위한 것이다.
반대로 욕설이나 상스러운 표현들이 쓰기 편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고 해서마구잡이로 쓰는 일은 인격의 낭비를 가져온다.이런 점에서 인터넷에서의 문법파괴나 상스러운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나쁜 언어습관은 마땅히 인격을 갈고 닦아야하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하기에 격이 있는 것처럼 듣기에도 격이 있다.들음의 격도역시 잘 말하는 훈련으로 하나씩 쌓아지는 일이다.바람직한 말하기의 습관이 바람직한 듣기 습관으로 이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쉽고 편한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힘든 존재이다.자기를 갈고 닦는 일보다는 더 쉽고 더 편한 데로 나가기 쉬운 어리석은 존재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먼저 깨달은 선지자들이 어리석은 무리를 향해 늘한탄하며 말했을는지도 모른다.무릇 귀 있는 자는 들을 지어니.
[안윤미 소설가]ym1209@hanmail.net
2001-01-3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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