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진념 경제부총리에 드리는 글

[데스크칼럼] 진념 경제부총리에 드리는 글

정종석 기자 기자
입력 2001-01-30 00:00
수정 2001-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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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께.

정통 경제관료 생활 40년 동안 쌓아온 진 부총리의 화려한 경력에비춰보면 이제야 경제부총리에 오른 것이 만시지탄의 느낌마저 듭니다.지금 안팎의 경제환경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진 부총리의 두 어깨가 더욱 무거울 것으로 짐작됩니다. 지난 1993년 문민정부 출범 당시 경제팀 안에서는 ‘목욕탕 수리론’과 ‘내과수술론’이 맞붙은 적이 있었습니다.목욕탕 수리론은 돈벌이가 잘되는 겨울철보다는 손님이 별로 없는 여름철 비수기에 목욕탕을 수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구들장 보수를 여름에 하고,수영장수리를 가을에 해야 한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합니다.경제가 잘 풀릴때 누적된 구조적 폐단을 뜯어고치려면 많은 기회비용이 듭니다.역설적으로 불황이 계속될 때 구조조정을 하면 적은 비용으로 손쉽게 모순덩어리를 제거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반면 내과수술론은 수술을 앞둔 환자가 먼저 몸을 보강해야만 의사가 집도하는 큰 수술의 성공이 가능하다는 일종의 ‘선 보양론(先 補養論)’입니다.기초체력이 없는 환자가 대수술에 들어갔다가 체력이달려 수술도중에 큰 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입니다.이전 정권으로부터 좋지 못한 경제를 물려받은 문민정부가 제대로 된 개혁을하려면 집권 초기에 어느 정도 경제를 살려놓은 다음 구조조정이라는 대수술을 단행하겠다는 논지였습니다.

당시 경제팀은 절묘한 경제정책을 내놓았습니다.이른바 신경제 100일 계획과 신경제 5개년 계획을 동시에 추진하고 나선 것입니다.먼저100일 동안 허약해진 한국경제에 ‘보약’을 투여,수술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만든 다음 5년동안 본격적인 경기안정과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내용의 2단계 신경제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했습니다.내과수술론과 목욕탕수리론을 합친 어정쩡한 처방이 신경제정책의 시발점이었고,국제통화기금(IMF) 체제는 문민정부 경제정책의 최종 성적표였습니다.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은 요즘에 와서도 큰 논란과 관심거리입니다.집권 3년을 맞는 국민의 정부에서도 최근 경제의 체력보강 논쟁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지난 연말 정부가 급속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경기부양책을 병행하겠다는 뜻을 밝힌 이래 ‘선(先)체력보강,후(後)구조조정’ 쪽으로 정책방향이 선회하며 다양한 경기부양책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금융시장이 일부 호전됐다고 해도 구조조정 원칙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그런데도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의우선순위 사이에서 혼선의 조짐들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물론 진 부총리가 정책방향을 결정하면서 고려 요인들이 많을 것입니다.정치권의 압력이나 벌떼같은 여론 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 부총리가 이 시점에서 가장 고려해야 할 것은 평소의 시장주의자답게 원칙론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런 측면에서 문민정부 초기에 전투작전하듯이 펼친 신경제 100일 계획,그리고 오랜 경제사회발전 5개년 계획을 하루아침에 팽개치고 급조한 신경제 5개년 계획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냉철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꿩도 잡고 매도 잡겠다’는 신경제정책이 꿩도 매도 모두놓치는 비운을 맞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강화문제를 세간에서는 종종 ‘잡초’와 ‘비료’로 비교합니다.잡초와 곡식이 같이 있으면 잡초를 제거하고 비료를 줘야 곡식이 잘 자랍니다.그러나 잡초를 뽑지 않고 비료를 많이 주면 오히려 잡초가 더욱 번성하는 등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진 부총리는 문민정부 초기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연수생활을 했습니다.그때 샌프란시스코의 겨울바람 속에서 우리 기자들과 만나 고국의 경제상황을 놓고 정열적인 담론을 벌이던 기억이 납니다.지금우리 경제상황은 당시 목욕탕 수리론과 내과 수술론 논쟁을 그대로닮아가는 인상을 받습니다.그릇된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인가,아니면올곧게 새로운 금자탑을 쌓을 것인가. 그것은 전적으로 진 부총리의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종석 편집부국장 elton@
2001-01-3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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