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동화/ 다락방 친구- 공지희

대한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동화/ 다락방 친구- 공지희

공지희 기자 기자
입력 2001-01-05 00:00
수정 2001-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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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도시 변두리에 있는 장미연립 오 층,맨 꼭대기집이다.

밖에서 보면 오 층 건물 지붕 위에 더 높이 뾰족한 빨간 지붕이 솟아 올라 있다.그 뾰족한 부분은 다락방이다.

엄마는 다락방을 창고로 생각한다.안 쓰는 물건을 잔뜩 갖다 놓고 청소는 하지 않아서 언제나 먼지가 풀풀 날린다.하지만 나는 이 곳을우리집에서 제일 좋아한다.

다락방엔 나만의 비밀공간이 있다.책장과 커다란 상자가 쌓여 있는뒤쪽에 있다.나는 거기다가 하나하나 귀중한 물건을 모아 두었다.

미니카,딱지 모은 것,구슬통,미니게임기.그리고 비밀일기장까지 숨겨 두었다.

만화책은 꼭 다락방에서 본다.그래야 더 재밌다.일기도 물론 여기서쓰면 더 잘 써진다.

처음에는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가끔 다락방엘 올라 왔었다.

한 번 올라오고 두 번 올라오고,그러다가 어느 날 부터인지 화가 나지도 않고 속상하지도 않은데 다락방엘 올라 오고 싶어졌다.

나는 다락방이 자꾸만 좋아졌다.

다락방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생각을 차분하게 모아주기도 하고,또 새로운 용기를 주기도 했다.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밤 하늘이 그렇게 예쁜지 나는 이 다락방에서알게 되었다.또 지붕으로 비가 내리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도이 다락방에서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이 다락방을 뺏길지도 모를 일이 생긴 것이다.

어느 날,아버지가 갑자기 내 다락방에 올라 왔다.

아버지가 다락방에 올라 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그 때 미니게임기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 게임기를 보면서,“나도 한 번 해 보자.” 했다.

아버지와 나는 번갈아 가면서 게임을 했다.

다음날,아버지는 또 다락방에 올라왔다.

아버지는 내가 읽고 있던 만화책을 들여다 보았다.

나는 잔뜩 긴장을 하면서 아버지 눈치만 살폈다.내가 만화책을 보는것을 싫어할 것 같아서였다.그런데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았다.오히려 내 옆에 앉으면서 “재밌니?”하고 물었다.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그러자,아버지는 다른 만화책을 한 권 꺼내바닥에 엎드려서 보기 시작했다.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아버지는 ‘큭큭!’ 웃기까지 했다.

나는 놀라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재밌어요?”아버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날,아버지와 나는 한참 동안 만화책을 함께 보았다.

나는 아버지 옆에 조용히 앉아서 생각했다.

‘언제나 바빠서 집에 늦게 들어오는 아버지가 요즘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올까? 늘 피곤해 하던 아빠가 지금은 안 피곤할까? 집에 오면 거의 아무말도 없고 신문이나 텔레비젼만 보는 아버지가 이제는 신문이나 텔레비젼이 재미 없어진 걸까?’궁금했지만 아버지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왠지 가까이 느껴지지가 않고 남처럼 느껴질 때가 더 많다.언제나 친구처럼 놀아주는 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날 밤,엄마와 아버지가 하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버지 회사에 큰 일이 생긴거다.가끔 들었던 ‘부도’ 라는 것이 아버지의 회사에도 일어났단다.엄마는 눈물을 흘렸고,아버지는 긴 한숨을 쉬었다.

다음날,비가 왔다.

나는 학교에서 오는 길에 생각했다.

‘오늘도 아버지가 다락방에 올라 올까?’집에 와 보니 아버지는 벌써 다락방에올라 와 있었다.

정말 이러다가 아버지가 다락방을 혼자 쓰겠다고 할까 봐 겁이 났다.

아버지는 다락방 창문 앞에 앉아서 비 오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오밀조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 너머로 들판이 보였다.막 추수를 끝낸 논이 쓸슬해 보였다.아버지는 더 멀리에 얕으막한 소나무 언덕을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지붕으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음악같이 들렸다.

“두둑 두두둑!” 오늘 같은 날은 다락방에 있기가 더 좋은 날이다.

아버지도 그걸 알았나 보다.

“야! 희동이 다락방 최고다.”아버지는 감탄스런 목소리로 엄지손가락을 내보였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다락방을 내 놓아야 할 때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희동아! 여기가 좋으니?”“네”아버지는 고개를 크게 끄덕끄덕 했다.

“나는 다락방이 싫었어.”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아버지도 너 만할 때 다락방에서 살았거든.”“정말이요?”“그래.아버지 살던 산동네 집은 아주 좁았단다.어머니 아버지,그리고 할머니,그리고 사 남매가 함께 살았지.”“일곱 식구였네요?”“그래.집은 좁은데 식구는 많았지.방이 모자라서 아버지는 작은아버지랑 다락 방을 함께 썼어.”나는 아버지 옆에 나란히 앉아서 아버지와 함께 비 오는 창밖을 내다 보았다.

아버지의 목소리는 점점 낮고 부드러워졌다.

“서서 허리도 펴지 못할만큼 천장이 낮았어.동생이랑 둘이 누우면꽉 찰 만큼 좁고… 다락방이 참 싫었어.”나는 머리속으로 아버지의 다락방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다락방에 누워서 잠을 잘 때면 빨리 커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지.그러면 천장이 높은 내 방 하나를 갖는 거야.커다란 창문 앞에반지르르 칠을 한 멋진 책상을 놓고 싶었어.그러면 저절로 공부가 잘 될 것 같았지.”아버지의 옆 얼굴을 보는데 괜히 가슴이 찡해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 다락방이 그리워.”아버지는 고개를 돌려가면서 다락방을 샅샅이 훑어보았다.마치 그립다던 그 다락방에 다시 온 것 같은 얼굴이었다.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그럼 다락방이 좋다는 거야? 싫다는 거야?’아버지는 다행히 나에게서 다락방을 뺏으려 하지 않았다.하지만 아버지가 집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다락방에 올라와있는 시간도 점점 늘어났다.

나는 다락방을 혼자 차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아버지와 다락방에 같이 있는 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버지가 다락방에 올라온 뒤로 재밌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만화책을 아버지랑 같이 보니까 혼자 보는 것 보다 더 재밌다.

게임도 역시 둘이 번갈아 하니까 더 재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건 혼자라서 할 수 없었던 놀이를 하는거다.

딱지치기나,구슬치기는 아버지가 나보다 훨씬 더 잘했다.아버지가 딱지를 접는 솜씨도 정말 예술이었다.

과자도 같이 먹고,라면을 끓여와서 같이 먹기도 했다.

그리고 또 좋은 게 있다.아버지가 놀이를 하면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이다.

이 옛날이야기는 옛날에 옛날에… 하는 전래동화가 아니다.아버지가들려주는 아버지 어릴적 이야기다.

“아버지 어릴 적에는 말야….”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참 재밌다.

작은아버지랑 고모들이랑,친구들이랑 놀던 이야기들이다.

아버지는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얼굴에 웃음이 활짝 핀다.

아버지 웃는 얼굴은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나는 아버지 이야기도 재밌지만 아버지가 웃는 얼굴을 보는 게 너무 좋았다.

이제는 아버지가 하나도 무섭지 않다.

다락방에 올라온 아버지는 예전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다락방에 올라올 때 마다 점점 어린아이 같아 졌다.

‘혹시 계단을 올라오면서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 아닐까? 아니 아예나이를 뚝,떼어 버리고 올라 오는 지도 몰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어떨 때는 형 같이 느껴졌다.그러다가 어떨 때는 꼭 친구같았다.

나는 바닥에 엎드려 일기를 쓰고 있었다.

아버지도 나를 따라서 공책을 펴고 엎드렸다.

“나도 이제부터 일기 좀 써야지.”이 다락방에서는 내가 아버지를 따라하고,아버지가 나를 따라하는 일이 많았지만,아버지가 일기를 쓰는 것까지 나를 따라 한다는 게 어쩐지 어색해 보였다.

아버지는 공책의 하얀 종이를 한참을 들여다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십오 년 만에 일기를 쓸라니까 뭘 써야할 지 모르겠네?”“십오 년만이라고요? 정말?”내가 이 세상에 태어 나지도 않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보다 더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동안 아버지가 일기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니.그만큼 바빴던 걸까? 아니면 여유가 없었던 걸까?“희동아! 너는 뭘 쓰는데? 좀 보여줘라.”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졸랐다.

우리는 일기를 다 쓰고 바꿔 보았다.

나는 일기를 이렇게 썼다.

제목: 다락방 친구요즘 새 친구가 생겨서 너무 신난다.

다락방에서 같이 노는 친구다.

나이도 많고 늙었지만,마음은 나와 똑 같은 열 한 살 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재미있게 놀아 본 적이 없었다.

요즘은 너무 행복하다.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놀았으면 정말 좋겠다.

나는 다락방 친구가 너무 좋다.

아버지는 일기를 편지처럼 썼다.

내 아들 희동아.

우리 희동이 많이도 컸구나.참 자랑스럽고 기쁘다.

아버지가 너무 힘들었는데 희동이가 함께 있어줘서 참 든든하단다.

희동이하고 다락방에서 지내는 시간이 너무 재밌고 좋다.

내가 이 곳에서 너와 함께 있는 동안 뭘 찾았는지 가르쳐 줄까?내가 어릴 적 살았던 다락방에서 품었던 꿈을 찾았단다.

이제 아버지는 힘이 막 솟아나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희동이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그 뒤로 우리는 늘 다락방에서 붙어 있었다.엄마가 직장에서 돌아와서 우리를 막 불러 내야만 마지 못해 내려왔다.

난 이제 아버지가 조금도 무섭지 않다.친구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요즘 섭섭하게도 아버지가 다락방에 올라오는 일이 뜸해졌다.

다시 일을 하게 되어 바빠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집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잠깐이라도 다락방에 올라간다.

나는 아버지랑 예전처럼 놀지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다락방에는 아버지랑 같이 놀았던 기억이 가득하니까.

공지희
2001-01-05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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