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호국인물’로 김종식(金種植) 해병대령이 선정돼 오는 5일오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헌양행사를 갖는다.
1926년 1월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한 김 대령은 하얼빈 대도관 상업학교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했으며,중국에 머물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1948년 3월 해사 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입대,같은 해 9월 해군소위로 임관했다.이듬해 2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49년 4월15일 해병대가 창설될 때까지 선발대 요원으로 활약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낙동강지역 진동리지구 전투에 참전,수류탄전을 전개하는 과감한 공격으로 적 정찰대대를 기습 타격해 마산으로통하는 요충지인 진동리를 확보하는 등 전공을 세워 전 대원이 일계급 특진했다.
1952년 3월 서울의 관문인 장단지구를 지키는 해병대 전투단 1대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삭발시켜 중공군과 결전을 벌였으며,전선으로 출동하기 전 묘지에 ‘고 해군소령 김종식 지묘’라고 쓴 팻말을 꽂아놓고 출전하는 일화를 남겼다.
전쟁기간 해병대가 수행한 모든 전투에 참전하여 귀신 잡는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는데 기여한 그는 휴전 이후 해병대 1연대장,헌병감을 역임했으며,1991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났다.정부는 금성을지훈장과 금성충무훈장을 각각 수여했다.
한편 전쟁기념관은 2001년 호국인물로 김 대령과 함께 2월 권영도(權永道)경찰 순경,3월 김금성(金錦成) 공군준장,4월 임충식(任忠植)육군대장,5월 백재덕(白載德) 육군 이등상사,6월 장세풍(蔣世豊) 육군소령,7월 김용배(金龍培) 육군 준장,8월 변규영(卞圭瑛) 육군 일병,9월 김용식(金龍植) 육군 일병,10월 백마3용사 강승우 외 2명,11월신철수(辛鐵洙)공군 소령,12월 김동하(金東河) 해병중장을 각각 선정했다.
노주석기자 joo@
1926년 1월 중국 하얼빈에서 출생한 김 대령은 하얼빈 대도관 상업학교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공부했으며,중국에 머물다가 광복과 함께 귀국했다.1948년 3월 해사 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입대,같은 해 9월 해군소위로 임관했다.이듬해 2월 해병대 창설요원으로 선발되어 49년 4월15일 해병대가 창설될 때까지 선발대 요원으로 활약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낙동강지역 진동리지구 전투에 참전,수류탄전을 전개하는 과감한 공격으로 적 정찰대대를 기습 타격해 마산으로통하는 요충지인 진동리를 확보하는 등 전공을 세워 전 대원이 일계급 특진했다.
1952년 3월 서울의 관문인 장단지구를 지키는 해병대 전투단 1대대장으로서 대원들을 삭발시켜 중공군과 결전을 벌였으며,전선으로 출동하기 전 묘지에 ‘고 해군소령 김종식 지묘’라고 쓴 팻말을 꽂아놓고 출전하는 일화를 남겼다.
전쟁기간 해병대가 수행한 모든 전투에 참전하여 귀신 잡는 해병대의 전통을 수립하는데 기여한 그는 휴전 이후 해병대 1연대장,헌병감을 역임했으며,1991년 4월 30일 세상을 떠났다.정부는 금성을지훈장과 금성충무훈장을 각각 수여했다.
한편 전쟁기념관은 2001년 호국인물로 김 대령과 함께 2월 권영도(權永道)경찰 순경,3월 김금성(金錦成) 공군준장,4월 임충식(任忠植)육군대장,5월 백재덕(白載德) 육군 이등상사,6월 장세풍(蔣世豊) 육군소령,7월 김용배(金龍培) 육군 준장,8월 변규영(卞圭瑛) 육군 일병,9월 김용식(金龍植) 육군 일병,10월 백마3용사 강승우 외 2명,11월신철수(辛鐵洙)공군 소령,12월 김동하(金東河) 해병중장을 각각 선정했다.
노주석기자 joo@
2001-01-0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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