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아름다운 마무리

[굄돌] 아름다운 마무리

이강옥 기자 기자
입력 2000-12-02 00:00
수정 2000-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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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출세(出世)’란 말에는 익숙하지만 ‘출처(出處)’란 말의본뜻은 잘 모른다.

출처는 원래 ‘세상으로 나아가 벼슬하는 일과 물러나 집에 있는 일’을 뜻했다.그래서 ‘출처어묵(出處語默)’은 나아가서 말하고 물러나서 침묵하는 처세의 근본행위가 된다.우리는 출세란 말에 집착하여 출세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 쓰지만,출처란 말의 뜻을 되새기지 않고 잘 돌아오기 위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이제 출처란 말은 사전에서도 그 본뜻을 잃어버렸다.

선인들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못지 않게 물러나는 것을 중시했다.

그래서 선인들은 출세란 말보다는 출처란 말을 더 자주 썼다.나아간세상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일련의 삶을 완성시키는 것이기에 더 소중했던 것이다.적절한 시기에 기꺼이 물러나 한 생을 알맞게 마무리한 선인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출처의 미덕을 망각하고 있다.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출세하는 데 혈안이 되는 사람은 많지만,스스로 물러갈 때를알아 ‘잘 물러났다’는 칭찬을 듣는 우리 시대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물러갈 때’는 자기 힘이 좀 남아 있을 때다.돌아가는 데도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매 학기 선배 교수들의 정년퇴임식에 참석한다.퇴임하는 선배 교수들의 마지막 말은 언제나 감동적이다.‘축하한다’는 좀 어색한 인사를 하며 나는 진심으로 그 분들의 노년을 축원하곤 했다.그러나 그들중 상당수는 다음 학기에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어떤 분은 정년 퇴임식까지도 겸허하게 물러나는 의식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새삼 과시하는 의식이라 여기는 듯 하였다.

미련없이 물러나 자기 삶을 정리하는 아름다운 노인이 그립다.우리는 그동안 사회 각 분야에서 마무리를 잘못하여 자신에게는 물론 남에게도 불행을 초래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어느 분야에서든 나이를 먹으면서 물러나 주는 것은 이 세상을 젊고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것일 수 있다.우리 사회도 그런 미덕을 실천하며 물러난 노인들이 여유있는 마음으로 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끝이 좋으면다 좋지는 않지만,끝이 나쁘면 많은 것들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생각하자.

이 강 옥 영남대 교수·국문학
2000-12-0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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