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영화제 폐막작 ‘화양연화’ 21일 개봉

부산영화제 폐막작 ‘화양연화’ 21일 개봉

입력 2000-10-20 00:00
수정 2000-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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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문득 지난 시절의 한 장면이 속절없이 그리웠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었을 게다.지난날은,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충분히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 수상작이자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화양연화’(花樣年華·21일 개봉)는 왕가위 감독이 꼭 그런 감수성으로 만든 영화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뜻하는 제목처럼 영화는 특정 시간,특정 공간에 카메라를 고정시켰다.60년대 홍콩.벽 하나를 사이에두고 같은날 나란히 이사를 온 차우(양조위)와 리첸(장만옥)은 처음엔 그냥 무덤덤했다.그러나 출장으로 자주 집을 비우는 남편때문에,회사일이 바빠 늘 퇴근이 늦는 아내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두사람은 조금씩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배우자들이 몰래 만나는 사이란 걸 알고서 둘의 감정은 시시각각 옷을 갈아입는다.막연한 호감은 동병상련의 연민으로,연민은 어느새 사랑으로.

CF같은 화면 느낌은 어느모로 보나 ‘왕가위표’다.‘중경삼림’이나‘해피투게더’와는 다르게 느린 호흡으로 감정의 흐름을 잡아낸 탓에 단조롭다고 느낄 수도 있다.아파트와 골목,자동차를 오가는 한정된 공간에다 남녀주인공 이외의 주변인물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됐고대사도 최대한 절제됐다.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했던 한 시절이 바로‘화양연화’”라는 감독의 감수성에 동의한다면 영화속 사랑이야기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가 없다.

드러내지 못하고 가슴으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섹스신이나 베드신 한번쯤은 허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한데,야박하게도 영화는 미완의슬픈 사랑을 에둘러 역설하기로 했다.거실에서 집주인이 마작판을 벌이는 통에 차우의 방에 갇혀 함께 밤을 보내면서도 두사람 사이에는감정의 떨림만 오갔을 뿐이다.사랑의 비밀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앙코르와트를 찾아간 차우가 흙벽에다 추억을 묻는 마지막 대목은 그래서 더 오래 잔상을 남긴다.

영화는 15개월간의 작업 끝에 완성됐다.60년대 홍콩의 인기유행가 ‘화양연화’나 냇킹콜과 마이크 갈라소 등의 배경음악,영화속 시간의흐름을 보여주는 주요장치인 장만옥의 의상에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황수정기자 sjh@
2000-10-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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