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은 1906년 서울∼신의주간 운행을 시작한 뒤 45년 중단되기까지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물류·교통의 대동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고종은 1896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이권쟁탈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경의선 부설권을 프랑스 피브릴르(Fives-Lille)사에 줬다.그러나피브릴르사가 약정기한(3년)을 지키지 못하자 이를 회수했다.이어 1899년 7월 ‘부설권을 절대 외국인에게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대한철도회사에 넘겼으나 대한철도회사마저 자금부족으로 공사를 해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고종은 조정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고 1902년 3월 각국주한 외교관을 초청,경의선 기공식을 성대히 열었다.그러나 실은 일본이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경의선 부설권을 강탈,부설했던 것이다.
당시 수많은 의병들이 경의선 일부를 폭파하는 등 일본의 강제부설에 항거했다.
당시 일본은 경의선 부설여부가 대동아공영권의 명운을 좌우한다고믿었다.조선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이었던 야마가타는 1894년 이토 히로부미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부산∼의주 노선은 동아시아대륙을 통하는 대도(大道)로 장래 중국을 횡단해 인도에 도달하는 철도가 될것”이라고 밝혔다.일본 내각은 1902년 10월 경의철도를 만주로 확장하는 것이 정치·경제적으로 유익한 방안이라고 의결하고 1911년 압록강 철교를 건설했다.
이에 따라 경의선 열차는 부산에서 출발해 만주의 장춘과 안동까지달리며 국제철도의 기능까지 수행하게 됐다.일본은 대륙침략의 교두보뿐아니라 우리의 광물·삼림자원·농수산물을 수탈하는 이권획득의 발판으로도 경의선을 이용했다.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이 각각 남과 북에 주둔하면서 철도를 통한왕래가 제약되기 시작했다.경의선 역시 개통 40년만인 1945년 9월11일 마지막 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한 후 서울∼신의주간 운행이 전면중단됐다.
6.25 전쟁으로 한반도 허리에 비무장지대가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압록강까지 단숨에 달리던 총 499㎞의 경의선은 서울∼문산간 46㎞의초미니 철도로 전락한 채 남북분단의 상징물이 돼왔다.
*경의선 약사.
■1896년7월 프랑스 피브릴르(Fives-Lille)사에 철도 부설권 부여.
■1899년7월 프랑스 부설권 회수,대한철도회사에 양도.
■1902년3월 기공식 ■1904년2월 일본,경의선 부설권 강탈.
■1906년4월 서울∼신의주간 열차운행 시작.
■1930년12월 서울∼수색 직결공사 완공.
■1938년7월∼1942년4월 서울∼평양간 275.5㎞ 복선화.
■1940년6월∼1943년5월 평양∼신의주간 224.0㎞ 복선화.
■1945년9월 남북철도 운행중지 조치.
■1951년6월 서울∼문산간 단축운행 실시.
■1963년11월 평양∼신의주 전철화 사업 완공.
■1985년 문산∼군사분계선(장단)간 12㎞구간 복원 위한 실시설계.
■1997년 용지매수 완료■2000년9월 서울∼신의주간 철도연결 사업 합의.
전광삼기자
고종은 1896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이권쟁탈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경의선 부설권을 프랑스 피브릴르(Fives-Lille)사에 줬다.그러나피브릴르사가 약정기한(3년)을 지키지 못하자 이를 회수했다.이어 1899년 7월 ‘부설권을 절대 외국인에게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대한철도회사에 넘겼으나 대한철도회사마저 자금부족으로 공사를 해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고종은 조정에 서북철도국을 설치하고 1902년 3월 각국주한 외교관을 초청,경의선 기공식을 성대히 열었다.그러나 실은 일본이 러·일전쟁을 치르면서 경의선 부설권을 강탈,부설했던 것이다.
당시 수많은 의병들이 경의선 일부를 폭파하는 등 일본의 강제부설에 항거했다.
당시 일본은 경의선 부설여부가 대동아공영권의 명운을 좌우한다고믿었다.조선 주둔 일본군 총사령관이었던 야마가타는 1894년 이토 히로부미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부산∼의주 노선은 동아시아대륙을 통하는 대도(大道)로 장래 중국을 횡단해 인도에 도달하는 철도가 될것”이라고 밝혔다.일본 내각은 1902년 10월 경의철도를 만주로 확장하는 것이 정치·경제적으로 유익한 방안이라고 의결하고 1911년 압록강 철교를 건설했다.
이에 따라 경의선 열차는 부산에서 출발해 만주의 장춘과 안동까지달리며 국제철도의 기능까지 수행하게 됐다.일본은 대륙침략의 교두보뿐아니라 우리의 광물·삼림자원·농수산물을 수탈하는 이권획득의 발판으로도 경의선을 이용했다.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이 각각 남과 북에 주둔하면서 철도를 통한왕래가 제약되기 시작했다.경의선 역시 개통 40년만인 1945년 9월11일 마지막 열차가 신의주에 도착한 후 서울∼신의주간 운행이 전면중단됐다.
6.25 전쟁으로 한반도 허리에 비무장지대가 들어서면서 서울에서 압록강까지 단숨에 달리던 총 499㎞의 경의선은 서울∼문산간 46㎞의초미니 철도로 전락한 채 남북분단의 상징물이 돼왔다.
*경의선 약사.
■1896년7월 프랑스 피브릴르(Fives-Lille)사에 철도 부설권 부여.
■1899년7월 프랑스 부설권 회수,대한철도회사에 양도.
■1902년3월 기공식 ■1904년2월 일본,경의선 부설권 강탈.
■1906년4월 서울∼신의주간 열차운행 시작.
■1930년12월 서울∼수색 직결공사 완공.
■1938년7월∼1942년4월 서울∼평양간 275.5㎞ 복선화.
■1940년6월∼1943년5월 평양∼신의주간 224.0㎞ 복선화.
■1945년9월 남북철도 운행중지 조치.
■1951년6월 서울∼문산간 단축운행 실시.
■1963년11월 평양∼신의주 전철화 사업 완공.
■1985년 문산∼군사분계선(장단)간 12㎞구간 복원 위한 실시설계.
■1997년 용지매수 완료■2000년9월 서울∼신의주간 철도연결 사업 합의.
전광삼기자
2000-09-1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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