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 이후 인류의 제1에너지원으로 등장,막강위력을 떨치고 있는 ‘검은 황금’석유.지구촌 경제를 쥐락펴락해온 국제원유가격 변동의 뒤에는 중동 전쟁,산유국인 중동지역과 서방세계의 갈등,석유수출국기구(OPEC)회원국내 갈등 등 다이나믹한 국제정세 요소들이 포진해 있다.
원유가가 가장 안정을 유지했던 시기는 전후복구기인 1948년부터 70년 사이다.이때까지는 석유가는 2.5∼3달러선.96년 달러가치 기준 배럴당 14∼16달러로 수에즈운하를 둘러싼 긴장이 조성된 56,57년 소폭상승하긴 했으나 대체로 인플레 상승 분을 쫓아가는 수준이었다.
급격한 유가상승이 시작된 것은 1974년.1973년 10월5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 등 서방에 대해 석유수출금지조치를 단행,72년 배럴당 2.6달러이던 유가는 74년말 11.7달러로 4.5배급상승했다.
아랍국은 이때 하루 500만 배럴 감량에 들어갔는데 100만 배럴 감량은 서방세계 생산력의 7%씩의 감소로 나타났다.78년 이란내회교혁명 시위가 거세지고 유정노동자들의 파업이 잦아지면서 유가는 13달러에서 20달러선까지 치솟았다.이후 79년 이란 회교혁명,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등 중동의 긴박한 상황은 유가에도 그대로 전이돼 80년 11월,41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OPEC가 고유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800만 배럴로 생산쿼터제를 실시했으나 회원국간 시장쟁탈전이 벌어지면서 10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하락세가 지속됐다.
90년.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석유공급이 불안해지면서 그해 11월,38달러까지 치솟았다.98년 산유국들이 아시아 경제위기를 과소평가,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증산에 나서면서 73년 이전 수준인 10달러이하로 다시 떨어졌다.99년 말부터 산유국들의 감산정책과 수요급증,재고분 부족으로 원유가 초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원유가가 가장 안정을 유지했던 시기는 전후복구기인 1948년부터 70년 사이다.이때까지는 석유가는 2.5∼3달러선.96년 달러가치 기준 배럴당 14∼16달러로 수에즈운하를 둘러싼 긴장이 조성된 56,57년 소폭상승하긴 했으나 대체로 인플레 상승 분을 쫓아가는 수준이었다.
급격한 유가상승이 시작된 것은 1974년.1973년 10월5일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공격,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아랍권은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 등 서방에 대해 석유수출금지조치를 단행,72년 배럴당 2.6달러이던 유가는 74년말 11.7달러로 4.5배급상승했다.
아랍국은 이때 하루 500만 배럴 감량에 들어갔는데 100만 배럴 감량은 서방세계 생산력의 7%씩의 감소로 나타났다.78년 이란내회교혁명 시위가 거세지고 유정노동자들의 파업이 잦아지면서 유가는 13달러에서 20달러선까지 치솟았다.이후 79년 이란 회교혁명,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등 중동의 긴박한 상황은 유가에도 그대로 전이돼 80년 11월,41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OPEC가 고유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1,800만 배럴로 생산쿼터제를 실시했으나 회원국간 시장쟁탈전이 벌어지면서 10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하락세가 지속됐다.
90년.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석유공급이 불안해지면서 그해 11월,38달러까지 치솟았다.98년 산유국들이 아시아 경제위기를 과소평가,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증산에 나서면서 73년 이전 수준인 10달러이하로 다시 떨어졌다.99년 말부터 산유국들의 감산정책과 수요급증,재고분 부족으로 원유가 초강세가 이어지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2000-09-0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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