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억지웃음 강요 방송의 질 떨어뜨려

[발언대] 억지웃음 강요 방송의 질 떨어뜨려

양경욱 기자 기자
입력 2000-07-19 00:00
수정 2000-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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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보면 전체 흐름과 관계없이 수시로 웃음을 터뜨리는 젊은 관객들 때문에 도무지 영화 볼 맛이 사라진다.내 생각이 너무 굳어 있는 걸까,아니면 저들 젊은이의 사고가 낙천적이고 유연한 걸까.

그런데 얼마전 일이다.동물의 세계를 퀴즈로 풀어보는 KBS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내용 중 기린 한 마리가 사자 4∼5마리를 떼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 나왔다.기린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고,사자도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해 달라붙는 치열하고 끔찍한 현장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자못 긴장한 채 숨죽이며 그 장면을 보고 있는데 TV에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사자를 떼어내기 위해 바삐 다리를움직이며 뒤뚱뒤뚱 뛰어가는 기린의 뒷모습을 보던 방청객들이 웃음을 터뜨린 것이다.스튜디오 현장에 동원된 몇몇 방청객들이 웃은 것인지 아니면 제작진이 집어넣은 효과음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순간 황당함에 기가 막혔다.

죽느냐 사느냐 생존의 갈림길에서 두 생명체가 치열하게 맞붙은 모습이 그들에게는 그저 한바탕 웃음거리 ‘쇼’밖에는 안된단 말인가.뿐만 아니다.요즘 TV의 각종 프로를 보면 정말 제작진들의 소양을 의심하게 되고 방청객들의한심한 태도에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감성이 결여되고 감각만 발달한 젊은방청객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깊어진다.한편으론 제작물 전체의 흐름을 읽어 내기보다는 한 순간 장면에 희희낙락해 단 1분도 참지 못하고 ‘우’‘와’ 소리를 질러대는 그들을 탓하기 전에,그들의 경박한 웃음과 환호소리를 요구하고 있는,그들을 그렇게 만든 기성세대들이 먼저 반성해야 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생각도 들었다.

PD를 비롯한 방송국 제작진들에게 부탁한다.스스로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는 저질스런 웃음 덩어리를 요구하지도,내용 중에 삽입하지도 말기를 말이다.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는 동물이다.억지웃음을 강요하거나 유치하고 가벼운환호성을 편집해 넣는다고 해서 그 프로그램의 질이나 시청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게다.젊은이는,특히 신세대는 미래의 기둥이다.우리사회의 기둥은 차갑고 딱딱한 성질의 시멘트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광택이 나고 주위와어우러지는 생명력있는 나무로 자라나야 한다.TV가 신세대들에게 일과성 감각 못지않게 감성을 키워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양경욱[서울 양천구 신정동]
2000-07-19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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