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한많은 6·25의 비극을 상기하는 달이다.북한의 남침이 빚은 동족상잔의 참화로 인해 수백만명이 죽었고 지금도 천만명의 이산가족이 한을 품고슬픔을 되씹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과연 6월 중순에 성사될 남북정상회담이 6·25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남과 북에서 지금도 울음을 삼키고 사는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남북정상회담에 낙관적 기대를 걸만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꾸준히 지속해온 ‘햇볕정책’이 결실을 이루는 증좌가 여러모로 엿보인다.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의 정책이 우리 정부의 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또한 인터넷 등의 통신혁명으로 인하여 ‘지구촌화’된 세계에서 북한만이 고립정책을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사물을 다룰 때 낙관을 앞세우면 방만해지기 싶다.
무조건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여러 가지 유발될 수 있는비관적 현상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다각도로 대비하는 지혜가 참으로 요청되는 때이다.
정부당국은 이 점을 유의하여 제반준비를 다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특이성을 일고할 필요가 있다.역사 속에서 겪었던 오랜 고통 때문에 한국인들은 ‘한(恨)’의 민족이라고 알려졌다.
‘한’이라는 단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없다.
‘한’에 가까운 영어 단어는 ‘원한,불평,상처,앙심,증오’이다.‘한’은이 모든 것을 함축한다.그러나 동시에 이들 중의 어느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한’은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독특한 것이다.한국인의 오랜 고난의산물인 셈이다.
‘한’은 다양한―개인적,공동체적,문화적,민족적,존재적,다세대간의,그리고 동시에 공통적인―단계의 고통을 나타내주는 표현이다.역사적으로 상고할때 우리 민족이 지녀온 한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일요드라마 ‘왕과 비’에서 폭군 연산군이 지니고 있던 ‘한’은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그러나 한이 높은이념,이상과 연결될 때 그것은 놀라운 창조의 동력이 될 수 있다.일본제국주의 압제에 품은 우리 민족의 한이 민족적 자유를 요구하는 민족운동으로 승화될 때 3·1운동이 일어났고 상해임시정부를 중심한 독립운동이 민족해방을낳을 수 있었다.
이제 한많은 6월에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었을 때 그들은 우리민족의 한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6·25는 확실히 남침이었다. 그것을 결정한 장본인인 흐루시초프의 비망록에입증되어 있다. 유태민족이 독일의 나치정권이 저질렀던 홀로코스트를 말할때와 같이 우리는 “6·25를 잊지 말자.” 결코 잊으면 안된다.그러나 오늘의 유태인들이 독일인들을 대할 때 하는 말과 같이 “용서하자.” 이번 역사적 회담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두 정상이 민족적 이상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어 민족적 한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하는 데 있다.새천년을맞이하여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한민족이 살 길은 모두가 모두를 사랑으로 감싸안고 21세기 지구촌에 우뚝서는 민족의 비전을 보는 데 있다.
우리 남과 북이 이스라엘 민족이 추구해온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드는것과 같은 공동비전을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의 한은 더 높은 차원으로승화될 것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염원했던 ‘동방의 빛’이 되는 민족적 비전으로 우리의 한을 승화하는 결실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마련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李 元 卨 한국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
과연 6월 중순에 성사될 남북정상회담이 6·25의 한을 풀어줄 수 있을까?남과 북에서 지금도 울음을 삼키고 사는 이산가족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매스컴 보도에 의하면 남북정상회담에 낙관적 기대를 걸만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꾸준히 지속해온 ‘햇볕정책’이 결실을 이루는 증좌가 여러모로 엿보인다.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의 정책이 우리 정부의 구상을 뒷받침하고 있다.또한 인터넷 등의 통신혁명으로 인하여 ‘지구촌화’된 세계에서 북한만이 고립정책을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사물을 다룰 때 낙관을 앞세우면 방만해지기 싶다.
무조건 비관할 필요는 없지만 남북정상회담에서 여러 가지 유발될 수 있는비관적 현상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다각도로 대비하는 지혜가 참으로 요청되는 때이다.
정부당국은 이 점을 유의하여 제반준비를 다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특이성을 일고할 필요가 있다.역사 속에서 겪었던 오랜 고통 때문에 한국인들은 ‘한(恨)’의 민족이라고 알려졌다.
‘한’이라는 단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될 수 없다.
‘한’에 가까운 영어 단어는 ‘원한,불평,상처,앙심,증오’이다.‘한’은이 모든 것을 함축한다.그러나 동시에 이들 중의 어느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한’은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독특한 것이다.한국인의 오랜 고난의산물인 셈이다.
‘한’은 다양한―개인적,공동체적,문화적,민족적,존재적,다세대간의,그리고 동시에 공통적인―단계의 고통을 나타내주는 표현이다.역사적으로 상고할때 우리 민족이 지녀온 한은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일요드라마 ‘왕과 비’에서 폭군 연산군이 지니고 있던 ‘한’은 많은 생명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그러나 한이 높은이념,이상과 연결될 때 그것은 놀라운 창조의 동력이 될 수 있다.일본제국주의 압제에 품은 우리 민족의 한이 민족적 자유를 요구하는 민족운동으로 승화될 때 3·1운동이 일어났고 상해임시정부를 중심한 독립운동이 민족해방을낳을 수 있었다.
이제 한많은 6월에 남과 북의 두 정상이 머리를 맞대었을 때 그들은 우리민족의 한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6·25는 확실히 남침이었다. 그것을 결정한 장본인인 흐루시초프의 비망록에입증되어 있다. 유태민족이 독일의 나치정권이 저질렀던 홀로코스트를 말할때와 같이 우리는 “6·25를 잊지 말자.” 결코 잊으면 안된다.그러나 오늘의 유태인들이 독일인들을 대할 때 하는 말과 같이 “용서하자.” 이번 역사적 회담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두 정상이 민족적 이상을 공유하는 계기가 되어 민족적 한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승화하는 데 있다.새천년을맞이하여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한민족이 살 길은 모두가 모두를 사랑으로 감싸안고 21세기 지구촌에 우뚝서는 민족의 비전을 보는 데 있다.
우리 남과 북이 이스라엘 민족이 추구해온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드는것과 같은 공동비전을 가질 수만 있다면 우리의 한은 더 높은 차원으로승화될 것이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염원했던 ‘동방의 빛’이 되는 민족적 비전으로 우리의 한을 승화하는 결실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마련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李 元 卨 한국기독교학교연맹 이사장
2000-05-2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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