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편리함’만을 찾을것인가

[대한광장] ‘편리함’만을 찾을것인가

김무곤 기자 기자
입력 2000-05-27 00:00
수정 2000-05-27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되도록 사람을 만나지 않고 이메일이나 팩시밀리로 일을 끝내 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전 같으면 기차로 몇 시간 달려서 겨우 만났을 사람과 몇 초만에 일을 마칠 수 있으니 참으로 편리해졌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다가 곰곰이생각해 본다.편리해진 만큼 정말 내 생활이 좋아졌는지.나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인생이 전보다 행복해졌는지.1박 2일을 걸려 사람을 만나서 해결해야 할 일을 단 몇 분만에 이메일로 처리하고 나서 절약한 그 시간을 나는깊은 사색에 바치는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진지한 대화에 쓰고 있는가?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전화가 연방 울려댄다.문명의 이기는 결코 나의노동시간을 줄여주지 못한다.오히려 끝없는 일의 지옥으로 내몰 뿐이다.내컴퓨터의 ‘받은 편지함’에는 아직 읽지도 못한 메일들이 수북이 쌓여 있구나.아,내 그를 만나러 부산으로 갔더라면 지금쯤 갈매기 낮게 떠다니는 노을진 바닷가를 거닐고 있겠지.

최근 수십년 동안 지구와 인간의 건강상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곳곳에서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다.우리 조상들은 어지간해서 걸리지 않던 암이나심장병과 같은 문명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다.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도 스트레스로 인해 찡그린 얼굴들 일색이다.그런 한편으로 일상생활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다.버튼만 누르면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금방 대화를 나눌수 있고 가사노동의 강도도 기계의 덕택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편리함과 건강의 악화,이 두 가지 상반된 현상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부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오히려 과학과 물질문명이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는 최근에 스스로 단순한 생활을 택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유복한 가정의 사람들이나 대기업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을 버리고 소박한 생활방식으로 돌아가는 예도 많다고 한다.이와 같은 현상은 마하트마 간디와 함께 인도에서 활동하던 그레그의 말을 빌려서 ‘자발적인 간소(voluntary simplicity)’라고 불린다.우리말로 쉽게 표현하자면 ‘사서 하는 고생’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러한 현상은 물질적인 풍요와 삶의 행복이 꼭 비례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건축가 이일훈은 이러한 삶의 방식을 건축적 문법으로 보여주고 있다.그에따르면 살기에 적당히 불편한 집이야말로 실은 사람이 살기 좋은 집이라고한다.왜냐하면 사람이 너무 편리하면 자연과 나와 나 이외의 사람을 몸으로느끼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이일훈에게 있어서 삶을 몸으로 느끼는 첩경은 자발적으로 불편하게 사는 일이다.더구나 생활이 조금 불편해야 건강해진다.그래서 그가 지은 집을 보면 집 안에서 할머니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다시 고쳐 신어야 한다든지 비 오는 날에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우산을 써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것은 오늘날 가장 보편적인 주거공간인 아파트에 대한 안티 테제를 넘어서 끝없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우리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도전이다.아파트는 너무나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사람이 움직여야 하는 범위를최소화하는 데 온 노력을 쏟고 있다.아파트에서는 할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아도 화장실앞에서 마주치게 되어 있고,듣고 싶지 않아도 할머니의 기침소리가 들린다.다시 말하면 ‘그러므로 오히려’ 아무도 할머니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그러나 ‘불편한 집’에서는 신발을 신는 ‘자발적인’ 행위를 통해서만 할머니를 만날 수 있다.할머니와 할머니를 만나는 내가 진정으로 존재하는 집은 어느 쪽일까? 자발적 간소화는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삶의 진정성 속으로 건져 올리는데 그치지 않는다.질박한 재료를 사용해서 지은 간소한 집이 많아지면 동네전체가 소박해지고 나아가 지구의 환경보전에도 도움이 되듯이 간소한 식사는 개인의 건강 뿐 아니라 지구 전체의 건강을 지키는 첫 걸음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난 후 졸업한 제자에게서 전화가 왔다.스승의 날에 찾아뵙지 못하고 너무 바빠서 전화로 인사한다고.전에 있던 작은 회사에서 고액의연봉을 받고 큰 회사로 발탁되었다고.일은 많고 힘들지만 나름대로 열심히하고 있다고.참 잘 되었다,축하한다는 격려 뒤에 내 입술 주위를 뱅뱅 도는말 한 마디를 나는 차마 입 밖에 내뱉지 못한다.“네 인생도 이제 복잡해졌구나” ◆김무곤 동국대교수·신문방송학
2000-05-27 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